보은 아곡리에서 희생된 박정순 교사와 자녀. 박 교사가 숨진 뒤 두 자녀는 고아로 성장했으며 어머니의 한을 달래는 뜻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충북역사문화연대 제공
“청주경찰서 무덕전으로 오시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보름 쯤 지난 1950년 7월 11일 오후 청주 중앙초교에 전화가 왔다. 박정순(28) 교사를 찾는 전화였다. 박 교사는 간단한 짐을 꾸려 허겁지겁 무덕전으로 갔다. 이미 많은 이들이 와 있었다.
“속리산 구경 시켜준다네….”
애초부터 반신반의했지만 대부분 이 말에 끌려 경찰서에 왔다. 150여명 정도 됐다. 청주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이었다. 박 교사는 경성사범을 나와 중앙초에서 교편을 잡았다. 남편은 좌익 활동을 하다 아이 둘을 남기고 행방불명됐고, 박 교사는 ‘빨갱이’ 낙인을 지우려고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박 교사 등은 미원초등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군경의 지시에 따라 트럭에 올랐다. 속리산이 있는 보은 쪽이었다. 하지만 30분이 채 안 돼 트럭은 멈췄다. 군경은 하차한 주민들을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아치실 골짜기로 내몰더니 총을 난사했다. 총소리와 비명이 하늘을 울렸다.
군경은 마을 청년들에게 주검을 매장하게 한 뒤 입단속을 시켰다. 이후 누구도 이 사실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충북역사문화연대, 충북 보도연맹유족회 등이 지난 2014년 6월 보은 내북면 아곡리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시굴 조사를 하고 있다. 충북역사문화연대 제공
이 사건이 난 지 64년 만인 2014년 6월 23일 시민들이 용기를 냈다. 충북 청주·청원 보도연맹유족회, 충북역사문화연대 등은 아곡리에 모였다. 주민 등이 증언한 아곡리 민간인 학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마을 주민 신덕호(2017년 작고)씨는 “마을 주민들을 모두 집에 들어가게 한 뒤 골짜기에서 총소리가 요란했다. 이후 군경이 ‘빨갱이 장사 치르라’고 해 아치실 주변 3곳에 시신을 묻었다”고 증언했다.
지난 2014년 6월 보은 내북면 아곡리 시굴 조사에서 나온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해. 충북역사문화연대 제공
당시 삽 등으로 신 씨 등이 가리킨 곳을 파헤치자 30분도 채 안 돼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 20여점이 나왔다. 다시 흙을 덮었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민간인 희생자 매장 사실을 확인하려고 시굴 조사를 했다. 이후 정부 등에 공식 유해 발굴을 요청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5년 만에 충북도가 답을 했다. 충북도는 오는 8일부터 보은 아곡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을 한다고 3일 밝혔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주도로 유해를 발굴한 뒤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할 참이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늦었지만 다행이다. 보은 아곡리뿐 아니라 충북지역엔 민간인 학살 추정지역이 87곳 있다. 추가 발굴을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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