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며 “5·18 당시 발포 명령을 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이거 왜 이래”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광주/공동취재사진
“이거 왜 이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32년 만에 광주에 와 내뱉은 첫마디다. 전씨는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11일 오전 8시33분 부인 이순자(79)씨와 함께 서울 연희동 자택을 떠나 4시간여 만에 광주지법에 도착했다. 전씨의 법정 출석을 반대하며 고성을 지르는 보수단체 회원들과 수백명의 취재진이 뒤섞인 가운데 한마디 언급도 없이 차량에 탑승했던 그다.
전씨는 승용차에서 내려 현장에 있는 취재진과 시민들을 한차례 둘러본 뒤 경호원의 부축 없이 스스로 걸어서 법정동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알츠하이머(기억장애)를 앓고 있다는 말과 달리 그는 당당하고 건강해 보였다.
취재진 사이에서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없느냐” 등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굳게 닫힌 그의 입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전씨도 “5·18 당시 발포명령을 했느냐”고 묻는 한 취재기자에게는 “이거 왜 이래”라고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앞서 전씨가 광주지법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5월 3단체(유족회,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회원들은 법원 안팎에서 ‘5·18 진실을 밝히라’ ‘전두환은 진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일부 회원들은 법원 경내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 제지에 막혔다. 5월 단체 회원들은 법정동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정가’를 부르며 전씨 구속을 촉구했다. 5·18의 참상을 목격한 시민들의 분노는 컸다. 노구를 이끌고 법원을 찾은 김아무개(81)씨는 “뻔뻔한 학살자 얼굴을 보고 싶어 나왔다.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고 참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도 전씨 비판에 동참했다. 광주지법 맞은편에 있는 동산초등학교 학생들은 창문을 열고 옹기종기 모여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이를 본 시민들은 “고맙다. 너희들이 대한민국 희망이다”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전씨가 광주로 떠나기 전인 이날 아침 7시30분께부터 서울 연희동 집 앞에서는 자유애국호국단 등 보수단체 회원 10여명이 전씨의 재판 출석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5·18이 뭐라고 40년 전 일을 굳이 끄집어내느냐”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허호준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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