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 거주하던 생존자들이 화재 뒤 새로 옮긴 고시원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ng9@hani.co.kr
지난해 11월 발생해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를 계기로 서울시가 앞으로 고시원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할 때 반드시 창문을 내고 방 면적을 7㎡(2평) 이상 확보하도록 강제하기로 했다. 일용직 노동자 등 주거 취약계층의 상징적 주거지가 된 고시원을 안전하고 인간다운 주거시설로 향상시키겠다는 목적에서다.
서울시는 노후고시원 거주자 주거안정 종합대책을 담은 ‘서울형 고시원 주거기준’을 18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서울에서 고시원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할 때 고시원의 방 한 칸 전용면적을 7㎡ 이상으로 해야 하며 방마다 창문(채광창)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방에 화장실을 포함할 경우 전용면적은 10㎡(3평) 이상 확보해야 한다.
시는 노후고시원 리모델링 사업에 이 기준을 즉시 적용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에 ‘다중생활시설(고시원) 건축기준’ 개정을 건의할 예정이다. 고시원은 전국 1만1892곳이 있으나 절반에 가까운 5840개(49.1%)가 서울에 있다.
2013년 정부는 주택법 시행령을 고쳐 1인 가구의 최소 주거조건을 14㎡(4.2평) 이상에 전용부엌과 화장실을 갖춰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고시원은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돼 이 적용을 받지 않는다. 현재 고시원을 지을 때 적용되는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엔 복도의 폭(1.2m~1.5m 이상)만 제시하고 방의 크기와 창문 여부는 기준이 없다.
그 결과 서울시가 시내 5개 고시원을 실태 조사해보니 고시원 방1칸 평균 면적은 1평에서 3평에 해당하는 4~9㎡ 규모였다. 창문이 없는 이른바 ‘먹방’이 많은 고시원도 많았다. 고시원이란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다중이용업소법)상 구획된 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를 말한다. 하지만 서울의 고시원들은 대체로 창문이 없는 1평 남짓한 방들이 폭 1m가 채 되지 않는 복도를 중심으로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창과 면적 기준과 함께 화재 예방을 위해 시가 지원하는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 예산도 지난해보다 2.4배 늘려 올해 15억을 투입하기로 했다. 서울의 고시원 중 1061곳(18.17%)은 법으로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한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 중이기 때문에 스프링클러가 없어도 법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해 화재가 발생한 종로구 국일고시원도 이에 해당됐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후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비를 전액 지원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시가 스프링클러 설치비를 지원받은 고시원에 대해 입실료를 5년 동안 동결하도록 하면서 고시원 소유주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시는 올해부터 입실료 동결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고시원 밀집지역에 시가 건물을 임대해 빨래방, 샤워실, 운동실 같은 생활편의 공유공간인 ‘고시원 리빙라운지’(가칭)를 마련하는 사업도 올해 시범실시한다. 시는 이 공간을 고시원에 거주하는 1인 가구들의 교류와 소통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노후 고시원 등 유휴건물을 시가 셰어하우스로 리모델링해 1인 가구에게 시세의 80%에 달하는 임대료로 공급하는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사업도 확대하기로 했다. 저소득층 가구에 임대료 일부를 지원하는 ‘서울형 주택 바우처’ 대상에 고시원 거주자도 새로 포함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서울시는 오래된 고시원이나 모텔, 여인숙같이 공실이 많은 서울 도심 내 근린생활시설을 공유주택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 1인 가구 주거 공급에 도움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시는 이와 관련된 주택법 개정도 국토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류훈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서울에서 고시원이란 주거형태는 최소한의 인권과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생활을 하는 취약계층의 현실”이라며 “고시원 거주자의 주거 인권을 바로 세우고 삶의 질을 강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크게 다쳤다. 이 고시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있지 않았고 건물 계단에는 쓰레기통이 쌓여 있어 탈출이 어려운 안전 관리 사각지대였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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