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청담동 주식 부자’로 알려진 이희진(33)씨의 부모를 살해하고 5억원을 훔친 김아무개(34)씨가 경찰에 붙잡혔지만, 범행 과정과 동기 등을 놓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주범 격인 김씨가 중국동포 3명을 인터넷으로 모집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정황이 드러난 반면, 범행 뒤 20일 동안의 행적에선 허술한 점이 드러나고 범죄 은닉 수법도 일반적인 살인 사건의 유형과 다르기 때문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9일 수사 브리핑을 열어 “김씨가 이씨의 부모를 살해한 직후부터 최근까지 숨진 이씨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부모의 안부를 묻는) 이씨의 동생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범행을 감춰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씨가 이씨 어머니 행세를 하며 ‘연막작전’을 펴 경찰 수사를 늦췄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어 “김씨는 피살된 부부가 주식 투자 관련 사기 혐의로 유명해진 이희진씨의 부모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부유층의 금품을 노린 전형적 강도살인 사건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경찰은 김씨 일당이 빼앗아 달아난 현금 5억원은 사건 당일 이희진씨 동생(31)이 고급 외제차를 팔아 부모에게 맡긴 돈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이씨 동생은 사기 등의 혐의로 형과 함께 구속됐다가 지난해 11월 구속 기간 만료로 풀려났다.
의문점은 숨진 부부가 사건 당일 거액의 돈가방을 집에 가지고 간 사실을 김씨 일당이 어떻게 알았는지다. 김씨 등은 지난달 25일 오후 3시51분 이씨 부모 집을 찾아 잠복했다가 15분 뒤 이씨 부모가 집에 들어오자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지난달 초 중국동포를 만나 한달 가까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작 이씨 어머니의 주검은 범행 장소인 아파트 장롱에 숨기고, 아버지 주검은 평택의 한 창고로 옮겨놓고 3주 동안 사실상 방치하는 등 허술한 행동을 보인 것도 의문점 가운데 하나다. 보통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주검을 유기하는 데 암매장 등의 수법을 쓰지만, 김씨는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씨가 피해자들을 살해한 뒤 가져간 5억원의 행방도 현재로선 오리무중이다. 김씨는 “공범들에게 일부 나눠준 뒤 나머지는 내가 갖고 있다가 썼다”고 진술했지만 정확한 용처는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 검거 당시 1800여만원을 회수하고 김씨가 나머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등에 대해선 명확한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19일 오후 김씨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20일 오전 10시30분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또한 경찰은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달아난 중국동포 3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 후 국내 송환 요청 등 국제 사법공조 수사를 진행 중이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