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왼쪽), 김재하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상임대표(가운데), 오거돈 부산시장(오른쪽)이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합의문을 발표하고 손을 잡고 있다. 김영동 기자
부산시민들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한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부산 노동자상의 위치를 결정한다. 노동자상의 위치를 두고 심각한 갈등을 벌였던 부산시와 시민사회단체가 합의했기 때문이다. 오거돈 부산시장과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김재하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상임대표는 17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상 건립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을 보면 부산시의회가 100인 원탁회의를 꾸려서 노동자상이 세워질 위치를 결정하고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건립특위)는 다음달 1일까지 노동자상을 설치한다. 원탁회의에 참여할 100인 선정방법 등 원탁회의 운영 방안은 건립특위와 부산시의회가 협의한다.
이로써 부산시와 시민사회단체의 갈등은 부산시가 지난 12일 일본 총영사관 출입문에서 150여m 거리의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있던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하면서 시작된 부산시와 시민사회단체의 갈등은 닷새 만에 일단락됐다.
이번 타결은 숨이 가쁘게 이뤄졌다. 15일 시민사회단체가 부산시청 1층 복도에서 항의농성에 들어가자 부산시가 공론화위원회를 제안하며 대화 분위기를 만들었다. 부산시와 건립특위는 16일 오후 3시30분 처음 만났다. 이 자리에서 부산시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해결하자고 다시 제안했고 건립특위는 노동자상 즉시 반환을 요구했다. 양쪽은 오후 5시께 헤어졌다.
협상장 주변에선 건립특위가 공론화위원회를 거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물꼬를 튼 것은 박인영 의장이었다. 박 의장은 16일 밤 10시께 건립특위를 만나 시민들의 폭넓은 의견을 듣자고 설득했다. 건립특위는 소수가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 대신에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100인 원탁회의를 여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지난 15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부산시의 강제징용 노동자상 반환을 요구하며 부산시청 1층 복도에서 밤샘농성을 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부산시와 건립특위는 17일 자정께 1차 실무협상에 이어 17일 오전 8시30분 2차 실무협상을 벌였다. 부산시는 공론화위원회 대신에 100인 원탁회의를 열자는 건립특위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거돈 시장은 “노동자상은 반환하고 원탁회의 결과를 존중하고 필요한 역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재하 상임대표는 “박 의장이 아니었다면 실타래 풀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시의회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서로 입장의 차이로 갈등과 아픔이 있었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 총영사관에서 150m 거리의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있다가 철거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김영동 기자
부산시와 건립특위가 합의했지만 원탁회의가 노동자상의 위치를 결정하기 전에 어디에 노동자상을 둘 것인지가 관심이다. 건립특위 관계자는 “원탁회의가 구성되기 전엔 부산시가 강제 철거 뒤 노동자상을 옮겨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뒀다가 원탁회의가 구성되면 강제 철거되기 전에 임시로 두었던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두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의원은 “부산시가 원탁회의 결정사항을 따르겠다고 했는데 철거했던 장소에 다시 노동자상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탁회의에서 일본 총영사관 출입문 근처 평화의 소녀상 바로 옆에 두는 것으로 결정하면 정부와 부산시 사이에 마찰 가능성이 있다. 다음달 1일 새 왕 즉위식을 앞둔 일본이 우리 정부에 항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김광수 김영동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