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초정행궁 조성이 한창이 초정약수 공원. 세종은 이곳에서 123일 머물면서 훈민정음 막바지 정리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윤주 기자
훈민정음 반포(1446년)를 2년 앞둔 세종은 여러 질환에 시달렸다. <세종실록> 등에는 그가 방대한 독서량 탓인지 눈이 매우 아팠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책을 읽기도, 정사를 돌보기도 어려워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당시 세종은 이런 보고를 받는다. “청주에 물맛이 호초(후추) 같은 것이 있어 초수(초정)라 하는데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세종실록> 26년 2월3일치) 이에 세종은 내섬시윤(공물공납을 담당하던 벼슬) 김흔지를 보내 초정에 행궁(임시 왕궁)을 짓게 했다. 이후 세종은 한양~영남대로~죽산~진천 등 280리 길을 거쳐 5일 만에 초정에 다다랐다. “임금과 왕비가 초수에 거동하니, 세자가 임금을 따라갔다.”(<세종실록> 26년 2월28일치)
세종대왕 초정 행궁 공사현장. 청주시는 155억원을 들여 세계 3대 광천수로 불리는 초정약수 터에 초정 행궁을 재현하고 있다. 세종은 이곳에서 123일을 머물렀다. 오윤주 기자
세종은 초정 행궁이 조성된 뒤 2차례 123일 동안 초정에서 눈병(안질) 등을 치료했다. ?영흥대군, 안평대군, 신숙주, 최항, 이사철, 이개 등 대신들도 동행했다. 훗날 세조도 초정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한 세종은 반대파 등의 눈을 피해 이곳에 머물면서 훈민정음 반포 전 막바지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혁연 충북대 초빙교수(사학과)는 “<세종실록>(세종 26년 2월20일치)을 보면, 훈민정음 반대파인 최만리가 ‘언문(훈민정음) 연구는 급한 것도 아닌데 행재(초정 행궁)에서 급급하시어’라고 상소한 기록이 있다. 초정 행궁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반포를 앞두고 정리 작업을 한 곳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정 행궁은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2년 뒤인 1448년 불이 나 사라졌다.
청주시는 세종대왕 초정 행궁 재현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 관광개발기금 47억5000만원, 도·시비 등 155억원을 들여 초정 행궁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 섀스타, 영국 나폴리나스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광천수’로 불리는 초정약수 주변 3만8006㎡에 2055㎡ 규모로 행궁을 지을 참이다.
21일 오후 이곳은 편전, 침전, 집현전, 왕자방, 수라간, 한옥체험시설 등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는 오는 9월께 초정 행궁을 준공해 내년 1월께 선보일 계획이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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