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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왜 망명한 이상설을 헤이그 특사로 보냈나?

등록 2019-04-23 11:20수정 2019-04-23 19:47

“고종 신임 두텁고, 외국어 등 세계정세 밝아”
일제 황무지개간권, 을사늑약 반대 등 주도
문무겸비…성명회 독립선언·신한혁명단 꾸려
고향 진천에 서전고…순국 102돌 추모식 열려
보재 이상설 선생은 문무를 겸한 독립운동가였다. 독립기념관 제공.
보재 이상설 선생은 문무를 겸한 독립운동가였다. 독립기념관 제공.
“세계 대사에 통하고, 애국심이 강하고, 교육발달을 도모하여 백년대계를 이루는 사람.”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보재 이상설(1870~1917) 선생을 두고 한 말이다.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선생은 안 의사의 평가처럼 과거와 현재, 세계와 소통하는 통로였다. 그가 어떻게 고종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을까?

충북 진천에서 나고 자란 보재는 1894년 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인 갑오년 문과에 급제하면서 세상에 나와 성균관 관장, 의정부참찬 등을 거쳤다. 그는 미국 선교사 헐버트 등과 친교 하면서 영어·프랑스어 등을 익혔으며, 수학 등 신학문에 밝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 그는 북간도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살던 룽징에 민족 교육 요람 ‘서전서숙’을 만들었다. 그의 고향 진천군은 그가 숨을 거둔지 100년 만인 지난 2017년 그의 뜻을 이은 서전고를 진천 혁신도시 안에 개교했다. 서전고엔 그의 동상·기념관 등이 조성됐으며, 학생들은 해마다 선생의 유적지 등을 답사한다.

‘헤이그 특사’, ‘헤이그 밀사’는 그를 상징한다. 1907년 4월 당시 광무황제(고종)는 “을사늑약은 대한제국의 뜻에 반하고, 국제법(공법)을 따르지 않은 원천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칙서를 그에게 내렸다. 고종은 보재를 정사(대표), 이준·이위종 열사를 부사로 삼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했다.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보재는 이후 미국·독일·프랑스 등을 돌며 독립을 위한 국제 협력을 요청했다.

서전고에 설치된 고종 황제의 헤이그 특사 밀서. 오윤주 기자
서전고에 설치된 고종 황제의 헤이그 특사 밀서. 오윤주 기자
고종은 왜 망명한 그를 헤이그 특사로 보냈을까? 김용달 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고종의 측근 그룹이랄 수 있는 상동 청년회 주축인 이시영·이회영·이동녕 선생 등이 이상설 선생을 특사로 추천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종은 선생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다. 또한 외국어에 능하고, 망명한 상태여서 국내의 일제나 친일파의 눈을 피하기도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 서원대 교수(역사교육과)는 “당시 이상설 선생은 이미 세계정세에 밝은 분이었다. 또 현직(의정부 참찬, 지금의 국무조정실장급) 때 특사 셋 가운데 직급이 가장 높은 것을 고려해 그를 대표 격인 정사로 임명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종은 선생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다. 앞서 1904년 일제가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토지는 국가의 근본이고 재물은 민생의 근본이다. 외국에 양여하지 않은 토지는 지킬 방도를 찾고 양여한 것은 돌려받아야 한다”는 상소를 하자 고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이준 등과 보안회를 조직해 일제를 규탄했다. 의정부 참정대신 한규설 선생 등과 을사늑약 반대에 나서기도 했다.

보재는 문무를 겸한 독립운동가였다. 1910년 연해주, 간도 등의 동포들과 ‘성명회’를 조직한 뒤 미국·러시아·중국 등에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독립의지를 밝히는 독립 선언서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독립운동 기지로 ‘한흥동’ 개척에 힘썼으며, 이범윤·이남기·유인석 등과 연해주·국내외 의병을 연합하는 ‘십삼도의군’을 편성했다.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하고 정통령에 추대됐으며, 이듬해 상하이 독립운동 세력과 규합해 신한혁명단을 꾸리기도 했지만 1917년 4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숨졌다.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변에는 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선생은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했으니 몸·유품은 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한다.

지난 22일 그의 영정이 있는 숭렬사에서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2돌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은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 진천군, 충북도 등이 마련했다. 진천군은 1999년 진천읍 산척리에 선생의 생가를 복원했으며, 2020년까지 주변에 기념관을 세울 참이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려고 추모식을 열었다. 오는 8월 관내 고교생과 선생의 발자취를 찾는 등 다양한 추모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송기섭 진천군수(가운데 검은 옷) 등이 22일 진천 숭렬사에서 이상설 선생 순국 102돌 추모식을 하고 있다. 진천군 제공
송기섭 진천군수(가운데 검은 옷) 등이 22일 진천 숭렬사에서 이상설 선생 순국 102돌 추모식을 하고 있다. 진천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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