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부검 결과 ‘주저흔’ ‘방어흔’ 확인
지난 20일 오전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가족 3명 중 남편의 주검에서 자해 전 망설인 흔적인 ‘주저흔’이 발견됐다. 또한 고등학생인 딸(16)에게는 손등에서 흉기를 막으려 할 때 생기는 ‘방어흔’이 확인됐다. 아내(46)의 주검에서는 목 부위 자상 외 특이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중인 의정부경찰서는 숨진 일가족 3명의 주검에 대한 부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이런 소견을 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숨진 3명 모두 목 부위의 찔린 상처와 베인 상처 등이 사인으로 판단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와 주변 진술 등을 바탕으로 생활고를 겪던 남편 ㄱ(50)씨가 아내와 딸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건에 아직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들이 남아 있어 주변인과 현장 수사를 보강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ㄱ씨 가족은 최근 심한 경제난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목제 가구 부품을 만들거나 조립하는 목공 작업소를 7년동안 운영해온 ㄱ씨는 최근 사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빚이 억대로 늘어 이자만 매달 수백만원씩 감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중학생 아들 ㄹ군의 진술에 따르면 가족이 느낀 절망감은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 발생 전날인 19일, 휴일이라 남매는 집안에 있었고 ㄱ씨 부부는 오후 4시께 집에 돌아왔다. 막내인 ㄴ군을 제외한 가족 3명은 저녁부터 한 방에 모여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린 ㄴ군이 빠진 상태에서 절망적인 이야기가 오갔고, 가족들이 서로 껴안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고 한다.
ㄴ군은 저녁에는 잠들었다가 밤 11시께 일어나 사건 당일 새벽 4시까지 학교 과제를 했다고 진술했다. 잠들기 직전 아버지 ㄱ씨가 방에 찾아와 “늦게까지 과제를 하느라 힘들겠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평소 부모가 깨우면 일어나는 습관이 있던 ㄴ군은 20일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고 진술했다. 아무도 자신을 깨우지 않는 것이 이상해 집안을 살피던 ㄹ군은 가족의 참상을 목격하고 119에 신고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ㄴ군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주변인들을 상대로 부채 규모와 가족들의 언급 내용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원한이 없이 가족들과 극단적 선택을 할 때 흉기를 이용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며 “이런 잔혹한 방법을 사용할 정도의 동기가 있었는지 경제적 부분을 비롯한 가족의 상황 전반을 조사해 사건의 원인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국과수에서 향후 나오게 될 약독물 검사와 흉기 감식 결과 등을 바탕으로 직접적인 사망 원인과 범행 과정 등에 대해서도 보강 수사할 방침이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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