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지사는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긴박한 상황과 심경을 22일 경남도청 도지사실에서 담담히 설명했다. 경남도 제공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그냥 멍했어요. 한대 세게 맞은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널리 알려진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10년 전인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져 위독하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그의 묘소가 있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다. 하지만 김 지사는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같은 시각 서울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드루킹 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지사는 10년 전 그날 아침 긴박했던 상황과 심경을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하루 앞둔 22일 경남도청 도지사실에서 담담히 밝혔다.
“대통령님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지신 것 같다. 위독한 상황이라 병원으로 긴급 이송 중이다.”
당시 봉하마을에 있던 문용옥 비서관(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김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첫 소식을 전했다. 김 지사는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문용옥 비서관이 경호실 보고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 지사는 김해 시내에 가족과 살면서, 봉하마을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김 지사는 즉시 출발해 병원으로 가다가 “봉하마을 대통령님 사저에 먼저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님이 뭔가 남겨뒀을지도 모르니까, 사저로 먼저 가겠다. (권양숙) 여사님도 어쩌고 계신지 살펴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방향을 바꿔 봉하마을로 갔다.
봉하마을 인근 진영읍내에 살던 박은하 비서관이 먼저 와 있었다. 박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의 컴퓨터를 켰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로 시작하는 14줄 171자의 유서가 바탕화면에 저장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집을 나서기 직전인 이날 새벽 5시21분 작성한 것이었다. 김 지사는 유서 1부를 출력해 챙겼다. 노 전 대통령은 김해 시내 한 병원을 거쳐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되는 중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둔 2010년 5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한 방문객이 김경수 비서관을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아침 7시께 김 지사는 병원으로 가며 김정호 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봉하마을에 대기해 주세요. 긴밀히 연락합시다”라고 했다. 당시 김정호 비서관은 봉하마을에 살며 친환경 생태농업을 책임지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5월23일 아침 9시30분께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서거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통령님의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거 이후 그 점을 심하게 자책했다.”
김 지사는 “서거 전날까지 재판 준비로 바빴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거 며칠 전 회의 도중 대통령님이 갑자기 ‘자네들은 앞으로 살 방도가 있는가’라고 툭 던지듯 보좌진에게 물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재판 과정에서 비서관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우리를 걱정하시는 것으로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또 “서거 전날 오후 대통령님이 비서실에 오셔서 담배를 찾으셨다. 담배 한대를 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가셨다. 항상 단정하신데, 그날은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부스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보좌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오셨던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를 설명했다.
노무현재단은 23일 10주기 추도식을 ‘탈상의 날’로 잡고 있다. 그러나 김 지사는 “나는 아직 개인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어, 탈상을 미뤄야 하겠다”고 말했다. 드루킹 사건 관련 혐의를 완전히 벗은 뒤 탈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이후 처음으로 추도식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도 제가 이겨내야 할 운명 같은 것이겠지요. 조금 늦더라도 좋은 소식을 가지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대통령님 찾아뵈려 합니다”라고 써 올렸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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