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등 해군기지 반대단체들이 30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제주도의 사과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지난 2007년 6월19일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결정하기 위한 임시총회와 주민투표가 열렸는데, 찬성 쪽 해녀들이 투표함을 갖고 달아나 총회를 무산시켰다. 이 일은 ‘투표함 탈취사건’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해녀들의 독단적인 행위가 아닌 것으로 12년 만에 드러났다. 총회를 앞두고 김아무개 당시 해군제주기지사업단장이 윤아무개 마을회장에게 주민투표 저지를 부탁했다. 해군 담당자는 강정마을 (찬성 쪽)사업추진위원회 사전회의에 참석해 주민투표 저지를 요청했고, 추진위는 이 회의에서 임시총회를 무산시키기로 결정했다.
총회 당시 해녀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투표함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찬반 양쪽 주민 간에 욕설과 몸싸움이 일어나 투표가 무산됐지만, 경찰은 이를 제지하거나 경고하지 않았다. 당시 마을에는 340명의 경찰이 있었다. 주민들이 투표함 탈취를 112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출동한다는고 말만 하고 실제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서귀포시청 직원들은 투표함 탈취 직후 자기들끼리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사해 지난 29일 발표한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건 심사결과’에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국가기관이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사실이 담겨 있다.
2008년 9월17일에는 국가정보원(국정원)과 제주경찰청, 해군제주기지사업단장 등 관련자, 제주도 환경부지사 등 간부, 서귀포시장 등이 해군기지 건설사업 관련 유관기관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덕상 당시 제주도 환경부지사는 “악수만 두지 않으면 해군기지 사업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하자”고 했고, 해군 통제실장은 “찬성 쪽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예산 집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제주지검 관계자에게 불법행위 떼쓰기에 대해 엄격한 법 집행을 요구하겠다. 외부 개입 세력에 대해서는 찬성 쪽에서 문제 제기하면 국정원과 경찰이 측면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제주도에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고소·고발해 줘야 경찰도 조처가 가능하다. 인신 구속 등이 있어야 반대 수위가 낮아진다”고 말했다. 특히 유 부지사는 “분열은 좋은 상황이다. 공세적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까지 발언 수위를 높였다. 해군은 또 해군기지 건설을 촉구하는 보수단체 집회에 음향장비와 식수를 지원하고, 현역 장교가 직접 펼침막을 설치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해군기지 건설 등 국책사업 관련 집단반발에 대해 사이버대응을 했고, 국군사이버사령부와 청와대도 조직적으로 사이버대응에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진상조사팀에 “당시 국정원이나 기무부대 등에서 당시 제주 경찰의 대응에 대한 보고서나 의견을 상부로 올린다는 말이 있었고, 그런 사정으로 경찰의 집회·시위에 대한 법과 원칙에 따른 처리에 제약이나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조사위는 “기지 건설 과정에서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을 강경 진압했으며, 특히 2011~2012년 제주지역 경찰을 넘어 육지 경찰을 대규모 동원해 상당수 주민과 활동가들을 체포·연행했다”고 했으나 “당시 도지사와 환경부지사, 국정원과 기무부대 등에 대한 조사권한이 없어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등 반대단체들은 30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또 원희룡 제주도지사에 대해서도 당시 공무원들의 개입이 인정된 만큼 즉각 사실 조사와 함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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