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한마음회관 진입로 입구에서 법인분할 주주총회를 둘러싸고 계속된 현대중공업 노사의 대치 장면. 신동명 기자
현대중공업이 31일 노조의 저지를 피해 기습적으로 시간·장소를 변경해 주주총회를 열고 법인분할을 가결 처리했다. 노조는 5일간의 주총장 점거를 풀고 “중대한 절차를 어긴 주주총회와 회사분할은 원천무효”라며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31일 오전 10시 법인분할 승인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열려던 울산 동구 전하동 한마음회관이 노조의 점거로 주주들의 진입조차 어렵게 되자 주총 시간과 장소를 오전 11시10분 남구 무거동 울산대 체육관으로 변경해 주총 개최를 강행했다. 현대중공업은 주총 개회선언이 끝나자마자 10분이 채 안돼 분할계획서 승인 등 2개 안건을 재빨리 가결 처리했다. 현대중공업은 “총 주식수의 72.2%인 5107만4006주가 참석해, 참석 주식수의 99.9%인 5101만3145주가 분할계획서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회사분할은 참석 주식수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 사안이다. 주총 승인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6월3일 분할등기를 마치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의 2개 회사로 나뉘게 된다. 현대중공업은 다음달 실사를 마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앞서 현대중공업 우호 주주와 주총준비요원, 질서유지 요원 등 500여명은 오전 7시45분께 애초 주총장인 한마음회관 진입로 입구에서 주총장에 들어가려다 주총장 안팎을 점거한 노조 조합원 2000여명(경찰 추산)에게 막혀 한동안 밀고당기는 대치상태를 계속했다. 주주 등은 이날 현대중공업이 제공한 회색 상의 점퍼와 흰색 헬멧을 쓰고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출발해 주총장 진입로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현대중공업 회사 쪽은 노조의 저지로 한마음회관에서 끝내 주총 개최가 어렵겠다고 판단되자 10시30분께 현장에서 주주들에게 주총 시간과 장소 변경을 안내했다. 회사 쪽은 안내문을 통해 “예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주주총회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부득이하게 시간과 장소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회사 쪽은 이날 회사 근처 현대호텔 앞에서 버스를 이용해 우호 주주들을 울산대 체육관으로 이동시켜 주총을 강행했다.
뒤늦게 주총장 변경을 알게 된 일부 조합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대로 이동했으나 주총을 막지는 못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주총이 끝난 뒤 유리로 된 주총장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소화기를 뿌리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불만을 나타냈다. 주총이 끝난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총 변경 고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무효를 청원하는 글도 올랐다.
노조는 또 오전 9시께 회사 쪽이 정문 앞을 버스 10여대로 차벽을 세워 봉쇄하자 회사 안으로 주총장이 변경될 것에 대비해 일부 조합원들을 회사 정문 앞에 집결시켜 회사 쪽과 대치하기도 했다.
현대중 노조는 주총 저지가 실패로 끝나자 지난 27일부터 닷새째 계속된 한마음회관 점거를 이날 오후부터 모두 풀었다. 민주노총과 현대중 노조는 “대다수 소수주주들이 변경된 주총 장소와 시간을 제대로 통지받지 못했다.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약 3% 주식을 보유한 현대중 노동자들은 회사분할로 고용관계나 노조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도 주총에서 의견 표명은커녕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주들의 자유로운 참석조차 보장되지 못한 주총은 위법하고, 통과된 안건 역시 무효”라며 무효소송에 연대해 나설 뜻을 밝혔다. 현대차 노조도 “현중 노조의 주총장 점거와 전면파업, 민주노총·금속노조의 연대투쟁에도 불구하고 현중 재벌은 불법으로 주총장을 옮겨 정몽준-정기선 경영세습을 위한 물적분할을 강행했다”고 비난했다.
현대중공업은 주주총회 장소 변경은 적법한 절차와 판단에 따라 이뤄졌으며, 불법을 자행한 쪽은 회사가 아니라 주총장을 점거한 노조라고 반박했다. 현대중 쪽은 “법원이 선임한 주총검사인(변호사)이 한마음회관에서 주총 개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장소 이동을 결정했다”며 “주총검사인이 울산대 체육관으로 이동해 개회해도 좋다고 해서 개회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명·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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