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왼쪽 넷째)가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23일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앞두고 ‘피조물 보호를 위한 미사’를 드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도 소리가 고요한 예배당을 채웠다. “주님, 가난한 이와 환경재앙의 희생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소서.” 성도 400여명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함께 기도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는 기후위기에 따른 ‘피조물 보호를 위한 미사’가 열렸다.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는 “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강 주교는 미사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인류)공동의 집인 지구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우리는 예기치 못한 미래에 피조물 전체가 파멸을 재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 주교는 이어 “생태환경이 급변해 ‘기후 난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약자가 출현했다”며 “우리도 미세먼지의 농도를 보도하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피조물 보호를 위한 미사’를 마친 천주교 신자들이 광화문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이정규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며 피조물로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강 주교는 “기후위기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라며 “사람과 모든 피조물이 하나의 ‘공동의 집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충실하게 헤아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우리 누이인 지구가 울부짖고 있다. 숨이 넘어가고 있다고 강하게 표현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환경과 자연이 망가지면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강주교는 “돈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힘이 없다. 자연이 망가지면 온몸으로 그 대가를 받고 살아간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8월10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제정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인류가 겪고 있는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문제를 알리기 위해 행동에 나선 청소년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강 주교는 오는 27일 5천명가량의 청소년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계획 중인 것과 관련해 “아주 작은 수지만 청소년들이 기후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굉장히 희망적이다.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용기 내 많은 청소년이 더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당국에서도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구는 지속 가능한지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미사가 끝난 뒤 천주교 신자 90여명은 비가 오는 가운데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라는 글이 적힌 펼침막을 들고 3.1㎞를 함께 행진했다. 행진은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광화문 동화면세점을 거쳐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졌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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