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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광해군이 지으려 한 인경궁의 배수로 발견

등록 2019-10-15 14:50수정 2019-10-15 21:13

인경궁 배수로 터…2016년 발견
3년 간 묻혔다가 보존공사 시작
10월 1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224번지 일대에서 조선 시대 인경궁 터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로 시설에 보존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정규 기자.
10월 1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224번지 일대에서 조선 시대 인경궁 터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로 시설에 보존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정규 기자.
조선 15대 왕 광해군이 인왕산 아래에 지으려 했던 인경궁 건설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로가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발견됐다. 인경궁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끝내 건설되지 못했다.

15일 <한겨레>가 확보한 문화재청의 ‘2017년도 소규모발굴조사 보고서’를 보면, 2016년 8월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땅 아래 2m 지점에서 조선 중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로 시설이 발굴됐다. 문화재청은 “문헌 기록 등에 따르면 배수로가 발굴된 누하동 224번지 주변에는 인경궁이 위치했던 곳”이라며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배수로 시설은 규모와 축조방식 등으로 볼 때 관영건물(인경궁)과 관련성이 밀접한 것으로 추정되며, 추후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인경궁의 위치를 비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배수로는 폭 1.65m, 길이 4m, 높이 90㎝ 규모다. 배수로를 이루는 덮개돌은 모두 13개다. 이곳 땅 소유자는 당시 여기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유적이 발견되면서 공사를 중단했다.

지난 3년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배수로에 대한 보존공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달 20일부터다. 소유자가 문화재청의 권고에 따라 배수로 시설을 보존하기로 하면서다. 소유자는 배수로를 보존하면서 주변에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지을 예정이다. 배수로와 연결된 문과 지하통로를 따로 만들어 유적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조사에 참여한 신희권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누하동 224번지 일대에 발견된 배수로 덮개돌이나 석축 규모가 일반 주택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며 “이 규모를 근거로 추정해보면, 인경궁은 창덕궁을 능가하는 규모로 구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배수로가 발굴된 일대가 모두 사유지여서 토지 소유자 등의 동의 없이는 문화재청이 추가 발굴 작업을 이어가긴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발굴된 문화유적 관리를 땅 소유자에게만 맡겨둬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유리로 밀폐해 배수로를 보존할 경우, 약품처리를 하지 않으면 유리막 안에 곰팡이와 이끼가 끼면서 유적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소유자에게 맡겨두면 사비를 들여야 하기 때문에 방치되기 십상이다. 문화재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유적 발굴비용은 지원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의 관리비용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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