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전경. 세브란스병원 제공
2014년부터 2018년에 걸쳐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취업청탁 등 광범위한 채용비리가 벌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납품업자와 병원 사무국장이 연루된 의혹에는 수억원대 금품이 오간 정황도 나타났다. 관련 비리에 연루된 병원 사무국장은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취업청탁을 한 브로커는 관련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실형과 함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27일 <한겨레>가 입수한 ‘세브란스 채용 브로커’ 이아무개(63·구속)씨의 판결문을 보면, 세브란스병원에 주사기 등 의료소모품을 납품하는 사업자 이씨는 2014년부터 권아무개 전 세브란스 사무국장 등에게 수시로 골프 접대 등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며 유착 관계를 형성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2014~2018년 8명에게 모두 1억1610만원을 받고, 세브란스병원 권 전 사무국장에게 취업을 청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와 사위, 조카나 본인 등을 취업시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건당 350만~2000만원씩을 받은 이씨는 직접 세브란스 채용면접관을 만나 현금 4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지난해 4월22일 관련 혐의(배임증재, 근로기준법 위반)로 구속된 이씨는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0월1일, 의정부지법으로부터 징역 1년6개월과 추징금 1억1610만원을 선고받았다.
의정부지검은 지난해 4월 이씨의 채용 청탁과 연루된 세브란스병원의 권 전 사무국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소환 조사했다. 그러나 권 전 사무국장은 지난 5월 추가 소환 조사를 며칠 앞두고 자신의 세브란스병원 사무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씨는 또 경기도 연천군청의 관급공사 건설사 선정 과정에서도 취업청탁을 대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인 정아무개 과장은 2015년 자신의 아들을 세브란스병원에 취업시켜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씨에게 2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이후 정 과장은 자녀의 취업을 위해 이씨와 권 전 세브란스 사무국장에게 뇌물을 주려고 관내 건설업자를 압박, 경기도 연천군의 땅 661㎡(200평)을 뜯어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정 과장은 뇌물수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세브란스병원 간부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던 이씨는 청소용역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씨가 2016년 권 전 사무국장을 통해 ㈜태가비엠을 세브란스병원 청소용역 업체로 낙찰받게 도움을 줬으며, 그 대가로 태가비엠이 이씨에게 다달이 3300만~4천만원을 지급했다는 증언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태가비엠은 당시 실제로 용역업체로 낙찰됐고, 이후 2018년에도 청소용역을 재계약을 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7일 오후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입찰비리 의혹, 노조파괴, 직장 내 괴롭힘, 임금체불 악덕용역업체 ㈜태가비엠 퇴출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신촌세브란스병원 청소 용역업체인 태가비엠이 용역 계약을 따내는 과정 역시 브로커를 통한 입찰비리였다는 제보를 받았다”다고 주장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브로커 이씨의 청탁으로 채용된 직원들은 모두 계약이 만료돼, 퇴사한 상태”라며 “청소용역 업체 선정 과정은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