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생활] 40년 가까이 시민 사랑…상반기 역사속으로
“보수비 급증·시설 낙후…투자가치 없어 철거”
“보수비 급증·시설 낙후…투자가치 없어 철거”
지방 사람들에게 ‘서울’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남산이요, 남산하면 남산타워나 식물원을 꼽는다. 남산타워는 지난해말 한 대기업이 리모델링을 해 새단장을 했지만, 남산의 서쪽 기슭을 지키며 40년 가까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남산식물원은 동물원과 함께 올 상반기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10일 오후 찾아간 남산식물원은 간밤에 내린 눈을 머리에 인 채, 잔설로 뒤덮인 남산의 품에 안겨 평화로워 보였다. 온실 천장을 뚫을 듯한 관엽식물들은 여전히 푸른 이파리에서 수증기를 내뿜고 있고, 동물원의 일본원숭이는 활대를 건너다니며 저희끼리 장난을 쳐댔다. 자녀 둘을 데리고 식물원을 찾은 한 아주머니는 “어렸을 때 소풍을 오곤 했는데 여기 와서 없어진다는 말을 들으니 아쉽다”고 말했다.
남산식물원이 처음 문을 연 때는 1968년. 재일동포 김용진씨가 만든 것을 서울시가 기증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남산식물원과 동물원은 70~80년대만 해도 봄이면 소풍 나온 학생들과 가족 나들이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마땅한 문화공간이 없었던 데다 서민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 도심에서 바람을 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린이대공원·서울대공원 등 경쟁 시설들이 속속 들어섰고 식물 5천여본과 동물 100여마리로는 아이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출 수 없었다. 시설이 낡아 수리비용도 수천만원씩 들었다. 김을진 남산공원관리사업소장은 “건물이 노후화돼 보수비는 급증하는데 기존의 백화점식 시설로는 국민수준에도 안맞아 더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됐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안에 식물원과 동물원이 철거되면 식물은 관공서에 분양하거나 식목일 등에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동물은 서울숲이나 능동 어린이대공원 등으로 옮겨진다. 철거된 자리에는 서울성곽 복원과 맞물려 자연 생태공간과 산책로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남산공원은 남산의 역사성과 자연성을 회복하고 다른 곳에 빼앗긴 시민들의 발길을 되찾기 위해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순환도로에 일반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는 대신 천연가스로 움직이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낡은 철제 울타리가 걷히고 있다. 또 국적 불명의 외래식물을 없애고 작은 생물이 살 수 있는 습지와 소나무길 등이 조성되고 있다. 최근에는 남산의 생태계가 복원돼 가재·도룡뇽·개구리 등이 발견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남산식물원을 찾아 어릴 적 추억을 들춰보고, 새로 생긴 소나무 탐방로에서 애국가 2절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의 진면목을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 소나무 탐방로에 가려면 인터넷(parks.seoul.go.kr)이나 전화(753-7060)로 신청하면 된다.
글·사진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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