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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에서 ‘장총찬’ 거쳐 ‘장관’까지…영화로 한국 현대사 관통했죠

등록 2020-09-28 15:06수정 2020-09-28 15:14

[배우 진유영의 44년 영화이야기]
<낙동강…> 대통령 한마디에 재촬영
피하고 싶었던 <얄개>로 유명해져
<인간시장> 4차례 장총찬 역 맡아
군사정권 삼엄한 검열 뚫고 ‘대박’
12년 만에 스크린 복귀 <담보> 조연
배우 진유영씨. 박경만 기자
배우 진유영씨. 박경만 기자

“예전에는 20여명이 3개월 만에 영화를 뚝딱 만들어 냈는데, 지금은 정부 제재도 없고 제작비나 인력, 제작기간도 넉넉해 좋은 한국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스무살 때 인터뷰에서 ‘왜 연기를 하냐’는 질문을 받고 ‘거지부터 경찰, 대통령까지 해보고 싶은 게 많아 연기한다’고 대답했어요. 지금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역할이 있으면 언제든 출연하고 싶습니다.”

1970년대 10대 시절 출연한 첫 영화로 신인연기상을 받았던 영화배우 진유영(63)씨의 말이다. 노·장년층에게 <고교 얄개>의 개구쟁이 고교생, <인간시장>의 장총찬 등으로 기억되고 있는 진씨는 이달 29일 개봉하는 하지원·성동일 주연의 <담보>에서 장관 역으로 출연한다. 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자택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나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44년 연기인생에 관해 이야기 들어봤다.

진씨는 1976년 임권택 감독의 <낙동강은 흐르는가>란 반공영화의 주인공인 소년병으로 데뷔해 이듬해 제1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신인연기상을 받았다. 당시 영화사들은 수입 외화 쿼터를 받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같은 당시 군사정권을 선전하는 ‘국책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lt;낙동강은 흐른다&gt;에 출연 중인 진유영씨.
<낙동강은 흐른다>에 출연 중인 진유영씨.

“<낙동강…>을 찍을 당시만 해도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전쟁영화를 촬영하다가 몇번이나 탱크에 깔려 죽을 뻔했지요. 배우들이 몸 사리지 않고 열연한 덕에 개봉 직후 대종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요. 영화사로부터 ‘신인상도 유력하니 정장 차림하고 국립극장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가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려요. 알고 보니 시상식 전날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낙동강 전투를 아는데, 이거 고증에 안맞아’라고 한마디 해서 대종상 후보에서 모두 빠지고 말았던 거죠.”

결국 이 영화는 극장 개봉 사흘 만에 상영이 중단되고,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재촬영한 뒤 이듬해 다시 개봉했다. 덕분에 그는 대종상 대신 백상예술대상을 받았다.

&lt;고교 얄개&gt;에 출연 중인 진유영씨(왼쪽)
<고교 얄개>에 출연 중인 진유영씨(왼쪽)

진유영이란 이름 석자가 널리 알려진 것은 당시 흥행몰이를 했던 하이틴 영화 <고교 얄개>를 통해서다. <낙동강…>에서 신인상을 받은 그는 ‘어른’ 역할을 하고 싶었으나 당시 <낙동강…>을 눈여겨본 석래명 감독의 집요한 요청에 다시 청소년 역으로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실제 나이는 4살이나 어린 이승현의 친구 역으로 나와 김정훈과 함께 ‘고교 얄개 3총사’로 등장했다. 삐딱하고 가난하지만 양심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불량학생’ 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엔 어른 역할을 하고 싶은데 어린 후배들과 고교생 역할, 그것도 조연을 하라고 해서 안하려고 도망 다녔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석달간 집에 찾아와 부모님을 설득하는 바람에 두손을 들었죠. 그걸 왜 했는지 후회를 많이 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은 나를 ‘고교 얄개’로만 기억해요.”(웃음)

배우 원미경씨와 함께 &lt;인간시장&gt;에 출연중인 진유영씨(오른쪽)
배우 원미경씨와 함께 <인간시장>에 출연중인 진유영씨(오른쪽)

얄개 시리즈 대여섯편을 찍은 뒤 그는 1983년 김홍신 원작의 영화 <인간시장> 1, 2편에서 주인공 ‘장총찬’ 역을 맡는다. 하지만 당시 5공화국 정권은 사회고발적 내용이 눈에 거슬린다며 ‘인간시장’이란 제목조차 쓰지 못하게 해 ‘작은 악마 스물두살의 자서전’, ‘불타는 욕망’ 등의 이름으로 선보여야 했다.

1984년 그는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정부가 예술을 제재하던’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면서 모든 게 싫어져 “달랑 10만원을 들고 미국으로” 떠났단다.

미국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4년을 버티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그는 1989년 ‘인간시장’이란 제목이 처음 들어간 <인간시장 4-오! 하나님>에서 제작·감독·주연을 도맡았다. 당시 안기부의 검열로 성 고문, 투신자살 등 민감한 대목들이 가위질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서울 피카디리 극장 한곳에서만 30만명을 모으는 등 대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당시 1관에서 30만명이면 전국 동시상영을 하는 요즘으로 치면 1천만명과 비견돼요.”

영화 &lt;인간시장&gt;의 상영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
영화 <인간시장>의 상영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

“<인간시장>을 보고 영화 흥행은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돈이 없어 고생고생하며 찍었는데 개봉하는 날 운 좋게 심야상영이 처음 시작됐어요. 이전에는 밤 10시까지만 영화를 상영했는데, 밤 11시반부터 한차례 더 늘려준 거죠. 개봉일에 1회부터 5회까지 매진된 뒤 마지막 6회 심야상영을 앞두고 종로3가 극장 앞에 대학생들의 야간시위가 계획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고심하다 스티로폼으로 극장 유리창을 꽁꽁 막고 상영했는데 새벽 1시에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그사이 상황이 모두 끝나 있었죠. 단 몇분만 어긋났어도 극장이 아수라장이 됐을 텐데 하늘이 도와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화가 대박을 친 뒤 모든 여건이 풍족한 상태에서 후속작을 제작했지만 이번에는 실패했다. “3편 성공에 취해 자만했기 때문”이었다.

몽골에서 다큐 촬영중인 진유영씨
몽골에서 다큐 촬영중인 진유영씨

그는 40대 들어 ‘사람에 치이는’ 영화계를 떠나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진다. 한국방송(KBS)에서 10여년 동안 국내외를 돌며 <도전! 지구 탐험대>, <바다는 살아있다> 4부작, <좋은나라 운동본부>, <tv데이트> 등 다큐 제작에 올인했다.

“영화를 하다 보면 50~100명이 함께 다니는데 사람에 지치고, 관객을 울리고 웃기려면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고…. 복잡하고 머리 아픈 작업이 싫어졌어요. 이에 비해 다큐는 카메라맨과 둘이 가면 되니 사람과 부대끼는 일이 없고, 자연이든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찍으면 되니 머리 아플 일도 없어 좋았죠.”

하지만, 그에게 영화는 고향과도 같은 존재. 그는 10년 전부터는 경기도에서 작은 극장을 운영하며 영화에 대한 갈증을 달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영애 주연의 <나를 찾아줘>에서 조연인 ‘강 회장’ 역으로 1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지긋한 나이의 장관으로 출연하는 <담보>에서는 소년병의 앳된 얼굴도, 사회정의를 외치던 장총찬의 총기도 찾아보기는 어렵겠지만 이를 대신하는 관록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 &lt;담보&gt;에서 대한민국 장관 역으로 출연하는 진유영씨.
영화 <담보>에서 대한민국 장관 역으로 출연하는 진유영씨.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tv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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