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인 경기도 광명 가학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내 텔레비전에 정세균 국무총리의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1차 전수조사’ 결과 발표 브리핑이 방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에 이어 광명시·시흥시 공무원 등도 3기 새도시 후보지 땅을 매입한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전국 지방정부와 시·도경찰청들이 11일 일제히 지역 내 새도시 예정지와 개발특구, 공공택지 등지에서의 땅투기 의혹을 살펴보겠다고 나섰다. 이날 정세균 총리도 “공직자의 투기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국가기강을 무너뜨리는 범죄”라며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산시는 시 공무원과 부산도시공사 관련 부서 직원들이 개발 예정지인 강서구 대저동 부산·김해 경전철 대저역 근처 땅을 매입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4일 대저역 근처 243만㎡에 1만8천가구를 공급하는 내용을 담은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신규 공공택지 추진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시 감사위원장을 단장으로 조사단을 꾸린 부산시는 위법행위가 확인되면 징계는 물론 형사고발한다는 방침이다. 류제성 조사단장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투기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경찰청도 이날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와 범죄수익추적수사팀 등으로 부동산투기 사범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정부 공식 발표 전 거래가 급증한 강서구 대저지구 투기 의혹을 살필 예정이다.
광주시도 지난 9일부터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최근 5년 광산구 산정새도시 주변 땅을 매입한 공직자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조사단은 업무 관련 공무원은 물론 이들의 직계 존비속까지를 조사 대상으로 정했다. 광주경찰청도 이날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꾸리고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세종경찰청은 연서면 일대에서 미공개 개발정보를 이용한 투기 내사에 착수했다. 이 지역에서는 2년여 전부터 ‘산업단지 개발에 따른 보상을 노린 투기가 많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김경열 세종경찰청 수사과장은 “의혹 사실확인 단계에서 최근 내사로 전환해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18년 8월 산단 후보지 선정에 앞서 연서면 와촌리에는 조립식 주택 수십채가 들어섰고, 빈 땅에는 빽빽하게 나무가 심어졌다. 한 주민은 “갑자기 빈집을 철거하고 조립식 주택이 지어졌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산업단지 계획이 발표됐다”고 전했다.
충북도는 청주 넥스트폴리스와 오송 3산업단지, 음성 인곡산업단지 개발과 관련한 투기 의혹을 살피기로 했다. 충북개발공사와 충북도청 바이오산업국, 경제통상국 직원 및 가족 등 1000여명이 스크린 대상이다. 충남도 감사위원회도 천안·아산 산업단지와 새도시 예정지 등을 중심으로 공직자들의 투기가 있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대구경찰청도 이날 경찰관 41명에 국세청 직원을 파견받아 부동산 투기 사범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의 내부정보 부정이용과 개발 예정지역 농지 부정취득, 토지 불법형질변경, 허위거래 신고 뒤 취소, 담합을 통한 시세 조작, 불법 전매, 미등기·불법 거래 등을 집중적으로 살피기로 했다.
인천경찰청이 인천과 경기 부천 지역 3기 신도시 예정지에 대한 투기 여부를 내사하는 가운데 11일 오후 3기 신도시인 계양 테크노밸리가 들어설 예정인 인천시 계양구 동양동 곳곳에 대토 상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상대적으로 투기 대상지가 많은 수도권에서는 경찰이 수사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이날 광명·시흥 새도시 후보지에서 땅을 매입한 광명시·시흥시 공무원들 수사에 착수한 경기남부경찰청은 ‘부동산 투기사범 특별수사대’를 편성·운영하기로 했다. 총괄팀, 수사팀, 사건분석팀, 자금분석팀(국세청 직원 2명 업무지원), 법률지원팀으로 꾸려진 특별수사대에는 모두 78명이 투입된다. 경기남부청 쪽은 “모든 부동산 투기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투기 사범을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며 “특히 투기자금, 범죄수익을 추적한 뒤 관계기관과 협조해 몰수, 추징보전, 환수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북부경찰청도 이날 엘에이치 직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전담팀 인력을 세배로 대폭 늘렸다. 경기북부청은 기존 특별수사팀을 ‘부동산 투기사범 특별수사대’(대장 곽순기 수사부장·경무관)로 격상하고 인원도 16명에서 45명으로 늘렸다.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를 주축으로 범죄정보팀, 범죄수익추정팀, 국세청 파견 직원 등으로 꾸려진 특별수사대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 등의 내부정보 부정이용과 대규모 개발지역 땅 투기 의혹을 광범위하게 살펴볼 계획이다. 인천경찰청도 63명 규모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계양 테크노밸리 사업 예정지와 부천 대장지구 등 관내 부동산 투기 의심 지역에서의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 등의 투기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테크노밸리 발표 직전인 2018년 11월 인천 계양구 순수 토지거래량이 전년보다 2.5배나 증가해 투기 의혹이 일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조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후보지로 발표되기 전부터 땅 거래가 급증한 제주 제2공항 후보지(제주시 성산읍)가 대표적이다. 제주도 내 100여개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비상도민회)는 “2015년 성산읍 지역 토지 거래 건수는 6700여건인데 매수자의 64%가 서울 등 다른 지역 거주자였다. 전수조사와 함께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책임부서 관계자, 사전타당성 용역진 등의 사전 정보 유출 여부와 차명·가명 계좌 조사 등 경찰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가 발표된 시점은 2015년 11월10일이다.
울산에서는 울산시민연대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적어도 2008년 경부고속철도(KTX) 울산역 역세권 사업 때부터 지역개발 사업에 대한 공직자 투기는 없었는지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성연철 기자, 전국종합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