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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게 변해가는 사과·배나무…“매일 조마조마, 코로나보다 무서워”

등록 2021-05-07 05:00수정 2021-05-07 10:00

백신·치료제 없는 과수화상병, 전국 27개 농가서 발생
사과·배나무 등 15.4㏊ 묻어…작년보다 10일 이상 빨라져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과수. 충북도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과수. 충북도

충북 충주시 산척면 9900㎡(3천평) 땅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홍준표(61)씨는 요즘 불안과 초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이웃 사과 과수원을 초토화했던 과수화상병이 또 찾아왔기 때문이다.

6일까지 충북 충주지역 9곳 농가에서 과수화상병이 발병했는데 7곳이 산척면이다. 홍씨는 “사과 다섯그루에서 화상병 흔적이 나타나 매몰 조처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바라보는 마음처럼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백신·치료제도 없으니 코로나보다 무섭다”고 했다. 과수화상병은 뾰족한 치료제가 없고 확산이 빨라 확진되면 땅에 묻는다.

사과 주산지인 만큼 주변 농가들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산척면은 지난해 5~6월 사이 과수화상병이 창궐하면서 면 전체 사과 재배면적(102.1㏊)의 80.7%인 82.4㏊에 심은 과수를 땅에 묻었다. 이웃 소태면도 전체 재배면적(87.3㏊)의 43.1%인 37.6㏊를, 엄정면은 재배면적(148.2㏊)의 19.8%인 29.4㏊를 갈아엎었다. 정윤필 충주시 농업기술센터 미래농업팀장은 “지난해에 견줘 올해 과수화상병 발병·확진이 이르지만 올해는 적극적인 예찰 활동 등으로 화상병 균을 담은 나무 궤양 등 화상병 징후를 빨리 찾아내고 있다. 화상병 확진 사례가 빨리 나오고 있지만, 확진 나무를 빨리 찾아내 확산을 막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일 충북 제천 백운면의 한 농가에서도 과수화상병이 발병했다. 충주는 지난해에도 전국 화상병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등 대유행을 주도했지만, 지난해 발병일이 5월16일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발병 속도가 빨라졌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6일 농촌진흥청 발표를 보면, 올해 들어 경기 안성 7곳, 평택 1곳, 충남 천안 9곳 등 충주를 포함해 전국 27곳 농가에서 과수화상병이 발병했고, 15.4㏊ 면적의 사과·배 과수를 땅에 묻었다.

농촌진흥청과 자치단체 등은 과수화상병 ‘주의’ 단계를 발령하고 전문가 등과 발생 농가 등을 중심으로 정밀 예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충주에서 집단 발병한 충북은 ‘경계’로 전국 단위보다 한 단계 올렸다.

게다가 갈색날개매미충, 꽃매미, 미국선녀벌레 등 돌발 해충 출현 시기도 7~12일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면서 화상병과 더불어 병해충 ‘트윈데믹’ 우려도 나온다. 최재선 충북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장은 “올해 예년에 비해 따뜻한 날이 이어지면서 화상병 발병이 빨라져 화상병 대응 단계를 3단계(경계)로 올렸다. 현장에서 화상병을 진단한 뒤 바로 매몰할 수 있게 하는 등 선제 대응으로 확산을 차단하겠다”고 말했다.

충북 괴산군이 과수 농가를 대상으로 과수화상병 예찰을 하고 있다. 괴산군
충북 괴산군이 과수 농가를 대상으로 과수화상병 예찰을 하고 있다. 괴산군

과수화상병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과수 가지, 열매, 잎 등이 검붉게 변한 뒤 죽어가는 세균성 전염병이다.

2015년 경기 안성 배 농가에서 처음 발병한 이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후 경기도 안성과 충남 천안에선 풍토병처럼 자리 잡아 해마다 발생한다. 2018년 강원과 충북으로 확산됐으며, 2019년엔 경기 연천·파주·이천·용인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충북은 2018년 35농가 29.2㏊에서 2019년 145농가 103.3㏊로 늘더니, 지난해 대유행 속에 506농가 274.7㏊에서 피해가 났다. 게다가 지난해 전북 익산 사과 농가에서도 화상병이 발생하면서, 중부권에 머물렀던 화상병 남방 한계도 무너졌다.

과수화상병은 사과·배 등에서 발생하는데, 지금까지 뾰족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과수 코로나’ ‘과수 에이즈’로 불리는 이유다. 국내에선 지난해 농림축산검역본부, 연세대·단국대 공동연구팀이 과수화상병균 유전체 서열을 해독해 미국 식물병리학회 학술지(‘플랜트 디지즈’)에 게재하는 등 관련 연구에 나섰지만 해법에 이르진 못했다. 이성진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은 “2015년 국내 발병 화상병 균이 북미에서 유입됐고, 이후 동일한 유형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이를 토대로 화상병 역학조사, 진단·예찰·방제 등 대응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화상병 발병 농가의 과수 매몰 보상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17년 55농가 45억2600만원, 2018년 135농가 205억4600만원, 2019년 188농가 329억800만원, 2020년 747농가 727억8600만원 등 2015년 이후 지금까지 1225농가에 1424억6800만원을 보상했다. 화상병이 발병하면 나무 나이, 나무 사이 거리 등을 따져 그루당 5만원에서 47만원까지 보상한다.

김보람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산업과장은 “과수화상병 발병 우려가 커지면서 예년 경험 등을 바탕으로 표준 운영절차를 마련하고 가상훈련을 시행하는 등 예의주시하고 있다. 적정 약제 살포, 비발생 지역 이동 최소화, 예방·예찰 강화 등 기본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발병과 확산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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