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15개 면적의 건물을 모두 태운 불이 꺼진 지 한달이 지난 21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 주변에 쿠팡 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지난 21일 오전 영동고속도로 덕평나들목을 빠져나오자마자 거대한 흉물이 눈에 들어왔다. 불길에 녹아내린 철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틈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건물 마감재로 쓰인 강철판 역시 종잇장처럼 찢겨 구조물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폭격을 맞은 듯 시꺼멓게 그을리고, 일그러진 건물 주변에는 아직도 매캐한 불냄새가 감돌았다.
지난 6월17일부터 엿새 동안 타올라 소방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축구장 15개 넓이와 맞먹는 12만7178.58㎡ 규모의 건물(지하 2층, 지상 4층)을 모두 태운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덕평물류센터의 현재 모습이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지금, 건물 불은 꺼졌지만 주민들 마음은 아직도 타고 있다. 물류센터가 있는 마장면 덕평1리 이장은 “불은 꺼졌지만 인근 논밭으로 떨어진 분진과 검댕이 농작물 사이로 땅속 깊이 스며들어 올해 작황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검댕이 워낙 많아 수확한 농작물을 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나중에 확인되겠지만 앞으로 2~3년 농사도 허탕이 될 수 있다”며 “쿠팡 쪽에 농산물 전량을 매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워낙 큰 화재였기에 주민들의 건강 걱정도 크다.
이장은 “불이 꺼진 지 한달이 지났지만, 바람이 부는 날에는 아직도 새까만 분진이 동네로 날아들어 목이 아프고 눈이 따갑다고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화재 건물 주변에 방진막이라도 쳐 더는 주민 피해가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ㅇ씨도 “식당 옥상에 가끔 음식 재료를 말렸는데, 지금은 분진 우려 때문에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가 드리운 피해는 광범위하다. 지난 20일 현재 이천시와 쿠팡 쪽에 접수된 주민 간접 피해 접수 현황을 보면, 농가 피해(농작물 및 축산 등)는 348건, 차량 피해 584건, 건물 피해 94건, 건강 피해(호흡기 질환 등) 115건, 기타 70건 등으로 모두 1200건이 넘는다. 피해 지역별로는 마장면 606건, 증포동 200건, 중리동 110건, 관고동 52건, 부발읍 47건, 호법면 23건, 백사면 20건 등 이천시 전역에서 간접 피해가 신고됐다. 인근 광주와 용인 지역 등에서도 38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화재 당시 간접 피해 호소가 이어지자 엄태준 이천시장은 지난달 22일 “막대한 분진이 시 전역에 퍼져 시민들이 호흡곤란 등 큰 고통을 받았고, 하천 물고기 떼죽음과 토양오염 등 환경 피해를 비롯해 농작물과 건축물, 차량 등의 피해가 광범위하고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독한 화재를 겪은 지역 주민들은 이제 쿠팡 물류센터를 완전히 철거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화재와 별도로 근처에 물류센터가 밀집하면서 교통과 환경·소음 등의 피해가 심하기 때문이다. 쿠팡 이외에도 5~6곳의 물류센터가 있는 덕평1리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쿠팡 재건축 불가 △토지 환원 △도로환경 개선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대형 화재가 일어났던 쿠팡덕평물류센터 정문을 보안요원들이 지키는 가운데 관계자들이 불이 난 건물에 고소 작업대를 이용해 작업하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현재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경찰 수사 등이 이어지고 있어 건물 철거와 재시공 문제는 아직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속한 보상 처리로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지난달 말에는 임직원 60여명이 피해 마을에서 환경정화 활동을 했고, 아주대학교 건강증진센터와 협력해 주민들을 상대로 출장 건강검진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지난 19일 화재 당시 이 물류센터 소방시설을 관리하는 업체 직원들이 고의로 6번이나 화재 비상벨 작동을 정지해 스프링클러 가동이 늦어진 사실을 밝혀내고 3명을 입건했다. 하지만 물류시설 설비를 담당하는 별도 법인이 있다는 이유로 쿠팡 법인이나 본사 관련자는 입건 대상에서 제외됐다. 글·사진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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