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응암로의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 공사 현장 앞에 3층 높이 플라타너스 세 그루가 고사해 있다. 김양진 기자
‘가로수를 훼손한 것을 본 목격자를 찾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찾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5거리 부근.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 공사가 한창인 건물 앞에 목격자를 찾는다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응암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 3~4층 높이 플라타너스 수십그루 가운데 유독 이 건물 앞 세그루만 잎이 갈색으로 변해 고사해 있었다. 이 나무들에는 ‘수사 의뢰중’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응암로엔 플라타너스 수십 그루가 길 앞쪽으로 줄지어 서 있다. 하지만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공사장 앞의 플라타너스(빨간색 동그라미 안)만 갈색으로 변해 죽어 있다. 김양진 기자
15일 서대문구 조경팀 설명을 들어보면, 이 장소에는 원래 플라타너스 5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 6월 초 건물주가 드라이브스루 매장 진출입로를 만든다고 해 두그루를 베어내도록 허가했는데, 그달 말부터 나머지 3그루까지 말라 죽기 시작했다.
구는 누군가 고의로 나무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해 지난달 13일 서대문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구 의뢰를 받은 한 나무병원은 ‘농약에 의해 고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나무 둥치에서는 드릴로 뚫은 것으로 보이는 구멍들도 확인됐다.
구 조경팀은 건물주가 두그루를 벌목할 때 ‘근사미’라는 농약을 사용한 점을 파악하고 고사한 세그루의 토양을 채취해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 분석을 의뢰했는데, 지난 13일 같은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구두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구는 이 결과를 서대문경찰서에 제출할 예정이다.
14일 <한겨레>와 함께 현장을 찾은 시민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김진환 위원은 “둥치에 구멍이 뚫려있는 점, 뚫린 구멍에서 근사미로 추정되는 액체의 흔적이 관찰되는 점, 수분 부족·병충해 피해 등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 누군가 고의로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제초제인 근사미를 투입해 고사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응암로의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 공사 현장 앞에 3층 높이 플라타너스 세 그루가 고사해 있다. 죽은 나무 위에 ‘수사 의뢰 중’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건물주는 구청 조사와 경찰 탐문 때 ‘억울하다. 나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 얼마 전 구청에서 배수로 정비사업을 하면서 가로수 뿌리를 건드린 것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구 역시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이진휘 조경팀장은 “누가 그랬는지 확실히 알 순 없다”며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는 엄중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범인을 반드시 잡을 수 있도록 경찰에 도움될 만한 자료들은 최대한 확보해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서 설치한 펼침막. ‘가로수 죽게 한 범인을 본 목격자를 찾습니다’ 김양진 기자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이 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디엠시(DMC)엄마들’ 커뮤니티에는 ‘진짜 천벌 받을 일이다’, ‘지나가는데 나무들이 너무 불쌍하다. 나무가 있었다면 이층 매장 뷰도 더 좋았을 텐데…’, ‘스타벅스도 범인을 잡는데 나서달라는 글을 스타벅스 고객의 소리에 남겼다. 동참해 달라’ 등 글 수십건이 올라와 있다.
경찰 수사는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주변에 공공 시시티브이(CCTV)는 설치돼 있지 않고 목격자도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건물 등 시시티브이는 보관기간(2주)이 짧아 별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도시숲법에서는 가로수 등을 훼손한 사람에게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응암로의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 공사 현장 앞에 3층 높이 플라타너스 세 그루가 고사해 있다. 죽은 나무 둥치에 뚫려 있는 드릴 자국.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제공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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