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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자락 잡자마자 바스락…‘올해 도시숲’ 인천 바람길숲에 무슨 일이

등록 2021-10-11 04:59수정 2021-10-11 07:30

폐선 수인선 철길따라 숲길 조성
잎 갈변하고, 마르는 현상 번져
“처벌해도 모자랄 판에 상까지”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에 메타세쿼이아가 서 있다. 10월 초지만 푸른 잎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에 메타세쿼이아가 서 있다. 10월 초지만 푸른 잎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멀리서 봐서 꽤 깔끔한 새 공원인가 했다. 다가서니 점점 기괴한 모습이 드러났다.

지난 5일 인천 ‘수인선 바람길 숲’을 찾았다. 폐쇄된 철로 1.5㎞를 따라 지난 8월 조성됐다. 건물 3층 높이의 키 큰 메타세쿼이아들을 비롯해 느티나무·팥배나무·계수나무 등 교목(키 큰 나무) 900그루와 측백나무·회양목·화살나무 등 관목(키 작은 나무) 2만2천그루가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다가가니 하나같이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숲’이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생장이 왕성해 식물계의 ‘괴물’이라고도 불리는 메타세쿼이아조차도 특장점인 풍성한 잎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바람길 숲’ 나무 대부분 수분부족 증세

대부분의 나무가 가지 끝부터 잎이 갈변해 시들어가는 다이백(dieback) 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이백은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 특히 수분부족일 때 나타난다. 잎을 집자마자 바스러졌고, 가지는 살짝만 당겨도 부서졌다. 시민들이 그 사이로 산책을 하고 조깅을 했다. 대낮이었지만 잎이 진 나무들과 대비됐다.

관리 주체인 인천시 쪽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변한 가지의 끝을 몇차례 잘라낸 흔적들도 눈에 띄었다. 잔디밭 곳곳에 베어진 나무들의 그루터기가 발에 걸렸다. 인천시 녹지정책과 담당자는 “나무들을 올해 3∼5월에 옮겨 심었다. 올여름에 더위 때문인지 일부 상태가 안 좋아서 죽은 가지도 쳐내면서 예의 주시하는 중”이라며 “점적관수(가는 구멍을 뚫어 나무 등에 물을 주는 것) 등으로 나무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에 측백나무들이 죽어 있거나 죽어가고 있다.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에 측백나무들이 죽어 있거나 죽어가고 있다.

 “생태적으로 건강하다”며 ‘최고 도시숲’ 선정한 산림청

이곳은 지난달 29일 산림청이 ‘올해의 최고 도시숲’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산림청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도시숲 등 생태적 건강성과 미세먼지 저감 등 기능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조성·관리하는 우수 사례를 선정했다”며 “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된 평가단 현장심사를 거쳤다”고 돼 있다. ‘현장을 가보긴 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무가 죽어가는 이유는 뭘까. 인천시와 시민단체 모두 수분부족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원인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인천시는 올여름 이상고온과 강수량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현장에 동행한 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은 설계 문제, 특히 배수 문제를 의심했다. 수인선 바람길 숲은 1996년까지 인천과 수원을 오갔던 전철 철길이 있던 곳에 만들어졌다. 철길은 소음을 줄이고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50㎝ 이상 두꺼운 자갈층 위에 놓인다. 이런 철길 주변에 아무런 시설 없이 나무를 심게 되면 토양 속 수분이 그대로 빠져나가 나무 뿌리가 극심한 수분부족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실제 현장에는 철길과 자갈이 그대로 있었고, 식재된 나무 옆에는 되레 공기가 잘 통하게 통기구까지 나무 한그루에 2개씩 설치돼 있었다.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 속 산수유나무들이 메말라 있었다. 살짝만 당겨도 겨울철 나뭇가지처럼 뚝 부러졌다.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 속 산수유나무들이 메말라 있었다. 살짝만 당겨도 겨울철 나뭇가지처럼 뚝 부러졌다.

 “배수 잘되는 철로 주변 특성 고려 못한 듯”

김진환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운영위원은 “배수가 잘되는 곳인지 토양 특성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작정 나무를 심어서 멀쩡했던 나무들을 한데 모아놓고 죽게 하고 있다”며 “만든 사람들을 처벌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로 나무 생육이 엉망인데 상을 주다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혁수 강원대 교수(환경융합학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장조사 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겠지만) 도시 환경은 일반적으로 외부 열을 많이 받아 식물의 수분 스트레스가 높다. 토양이 수분을 품고 있다가 식물이 필요할 때 공급해야 하는데, 자갈 위에 세워진 철로가 옆에 있으면, 물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이동하려는 성질 때문에 (토양에) 수분이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 메타세쿼이아의 어린 잎들이 나자마자 갈색으로 변해 있다. 이 나무는 한반도의 가문 겨울을 잘 버텨 내년 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 5일 인천시 ‘수인선 바람길 숲’ 메타세쿼이아의 어린 잎들이 나자마자 갈색으로 변해 있다. 이 나무는 한반도의 가문 겨울을 잘 버텨 내년 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산림청과 인천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김주열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장은 “나무를 심다 보면 배수가 잘돼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안돼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천시 담당자도 “미추홀구에 확인해보니 배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한다”며 “문제가 제기된 만큼 미추홀구에 확인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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