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3회 정례회 2차 본회의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 김경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19일 서울시의회의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 심사가 시작되는 가운데, 시의회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편성한 예산안 중 서울런·뷰티도시·안심소득 등 11가지를 추려내 혈세를 낭비하는 ‘엉터리’ 예산으로 규정했다. 유사·중복 사업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앞서 지난 1일 오 시장은 44조원가량의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같은 이유로 전임 시장 시절의 주민자치·노동·주거복지 등 예산을 삭감한 바 있어 오 시장으로서는 당시의 말을 돌려받은 셈이다. 역대 최대 서울시 예산을 둘러싼 시의회와 오세훈 시장 사이의 힘겨루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한겨레>가 입수한 시의회 예산정책연구위원회 위원과 의회사무처 예산정책담당관이 작성한 ‘서울시 및 교육청 예산안 분석’ 자료를 보면, 시의회 사무처는 20억원이 넘는 99개 신규 사업(1조8157억2600만원)을 우선 검토해 11개(1474억7546만원)를 예산 ‘낭비’ 사업으로 꼽았다.
서울런, 뷰티도시 서울,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등의 사업은 기존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됐다고 지적했다. 시가 내년 167억8926만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서울런’ 사업은 초·중·고교에 다니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는 것이 뼈대다. 하지만 시의회는 “입시 목적의 주요 교과목 선행학습 등을 위해 사설학원에 공공재원을 직접 투입하는 것은 사교육을 부추길 우려가 크고 부적절해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의 비대면 학습멘토링, 랜선야학 등과 중복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43억5천만원짜리 신규 사업 ‘뷰티도시 서울’ 사업은 이미 서울시 내에서 관련 사업 예산들이 편성돼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5년간 연평균 10.9% 성장한 뷰티산업에 지원이 시급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 재원으로 여타 신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시의회 검토 결과다. 아울러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62억2200만원) 사업도 소상공인 종합지원사업, 생활상권 활성화 사업 등과 겹친다. 특히 생활상권 활성화 사업은 만족도가 73%로 반응이 좋다. 시의회 관계자는 “성과를 내는 검증된 사업들을 확대해야지, ‘오세훈표 지원’ 이름을 붙이기 위해 전시성 사업을 편성하는 건 혈세 낭비”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청년들에게 대중교통비·전월세보증보험료·재테크교육을 지원하는 청년권익증진 신규 사업(219억9510만원)에 대해 시의회는 “청년 문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시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청년들에게 재테크·금융 교육을 하는 ‘영테크’ 사업은 투자 열풍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됐다.
“오세훈 지방채 발행 자제 방침 때문에 미래세대에 더 큰 부담”
‘도시자연공원구역 협의매수’의 경우 ‘지방채 발행 자제’ 주문으로 향후 서울시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는 도시자연공원구역 안의 사유지를 사들여 시민들의 여가를 보장하는 사업에 향후 9년간 2조2801억원의 시비를 투입할 계획인데 올해 배정된 예산은 617억3천만원에 그친다. 시의회 관계자는 “어차피 사들여야 할 땅이라면 땅값이 조금이라도 싼 현시점에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매매해야 하는데, 오 시장의 주문 때문에 예산안이 많이 축소된 것으로 안다. 지방채 발행을 할 때 안 하면 미래세대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 시장은 페이스북에 전임 시장 시절 시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됐다고 지적하면서 “지방채 발행은 미래세대의 빚”이라고 했다. 74억2244만원이 투입돼 중위소득 85% 이하 저소득층 800가구에 월 100만원가량 현금을 주는 ‘안심소득 시범사업’에 대해선 “무작위로 800가구를 선정하다 보면 생활 여건이 더 나은 대상자가 선정되는 등 공정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요행 또는 운에 기반하는 제도로 인식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메타버스 플랫폼 구축 사업인 ‘메타버스 서울’(30억2천만원)은 디지털범죄 등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없다며, 서울형 헬스케어 시스템 구축 사업(60억7622만원)은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도 없이 사업을 확대하려 한다며 ‘엉터리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기차 예산 반토막…친환경 자동차 문화 정착 말뿐이었나”
시의회는 오 시장이 감액한 예산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오세훈 시장의 신규 예산과 동일한 기준으로 따져 20억원이 넘는 163개(2조4131억2300만원)에 대해서다. 이 가운데 △마을생태계 조성(60.4% 삭감)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운영(48.9% 삭감) △전기차 보급(55.8% 삭감) △티비에스(TBS) 출연금(32.6% 삭감) △노들섬 문화명소 조성사업(39.5% 삭감) 등 11개는 되살려야 할 예산으로 꼽았다. 내년 마을생태계 조성 사업에는 올해보다 184억1485만원이 깎인 120억6300만원만 배정됐다. 시의회는 “마을이라는 공간은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지속적인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며 “본래 목적도 달성하기 힘든 예산 편성”이라고 판단했다. 전기차 보급 사업 예산에 대해서는 “친환경 자동차 문화 정착이라는 시의 목표에 따른 적극적인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 시의원(예산정책연구위원장)은 “이번 사무처 분석 보고서는 향후 이뤄지는 상임위 예산 심사에서 중요하게 참고하기로 했다. 시에서 신경을 썼다고 하는 20억원 이상 큰 사업마저 이런 수준인데, 더 작은 사업들은 어떻게 짰을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시의회의 예산안을 둘러싼 갈등이 2010년 오 시장이 자초했던 ‘친환경 무상급식’의 국면과 유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시 시의회가 수정해 의결한 ‘2011년 예산안’에 대해 오 시장이 동의해주지 않아 그가 물러나기까지 10개월가량 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
실제로 혈세 낭비로 규정한 중복 예산의 삭감은 시의회의 권한이다. 서울런, 뷰티도시 서울 등의 사업에 대해 시의회가 삭감을 해도 오 시장은 재의 요구를 할 수 없다. 지방자치법 108조는 재의 요구를 할 수 있는 경우를 △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할 경비 △비상재해로 인한 시설의 응급 복구를 위해 필요한 경비를 삭감했을 때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반대로 시의회가 자치구 마을생태계 조성,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운영 등 감액된 11개 사업 예산을 증액하려면 오 시장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법 127조에서는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동의 없이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로운 비용항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오 시장이 이들을 되살릴 가능성은 낮다. 이미 지난 9월 “서울시 곳간은 시민단체의 전용 에이티엠(ATM)기”라는 발언을 할 때부터 각을 세운 사안이다.
김양진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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