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맨 왼쪽)과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왼쪽 두번째)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타종 행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식을 현장 행사 없이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했다. 서울시는 이 사진을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서울시 제공
두달가량 진통을 겪었던 44조원 규모 올해 서울시 예산안이 법정시한 마지막날인 지난달 31일 시의회를 통과했다. 예산안 심의가 사실상 공전될 정도로 심각하게 대립했던 시와 시의회가 대타협에 이르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11월1일 시민사회분야 민간위탁·민간보조금 예산을 대폭삭감하고 ‘서울런’·‘뷰티서울’ 등 이른바 ‘오세훈표 예산’을 새로 편성한 44조748억원 규모 올해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반발한 시의회는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민간위탁 예산 등은 되살리고 오세훈표 예산은 대거 삭감했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시와 시의회 사이 냉기류가 흘렀지만, 결국 민관위탁 예산 등은 올해 대비 80%, 오세훈표 예산은 편성액 대비 80% 수준으로 회복하는 수준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생존지원금 등이 추가돼 지난달 31일 44조2190억원 규모 예산안이 재석 의원 77명 중 찬성 65명·반대 10명·기권 2명으로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극적인 타협에는 올해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라는 정치일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격돌하는 큰 선거를 앞두고 극한 대립을 벌이는 것은 오 시장과 시의회 양쪽에 부담이란 분석이다.
한 시의원은 “민주당·국민의힘 모두 중앙당에서 ‘대선 앞두고 자중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정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오 시장이 꼽은 (시민사회분야 민간위탁 등) 12개 분야 가운데는 특정 시민단체가 이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지역유지들이 이끄는 조직도 있다. 시 감사에서도 해당 사업을 없앨 정도로 문제가 드러난 것도 아니고, 서울시 내부에서도 시민사회와의 갈등이 역효과가 많다는 식의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역전된 대선후보 지지율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겠냐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4월 오 시장은 57.5%의 박영선 후보(39.2%)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한국갤럽의 서울지역 정당지지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33.5%, 국민의힘 29.1%로 나타났다. 오 시장으로서는 ‘민주당 다수’인 시의회라는 상수에다 여론까지 뒷받침이 안되는 상황인 셈이다.
김경 시의원은 “아무래도 오 시장 입장에서는 여론조사에 무척 신경이 쓰였을 것”이라며 “서울시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던 <TBS> 예산이 막판에 타협됐던 것도 여론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해 375억원이었던 <TBS> 출연금을 252억원으로 30%가량 줄이는 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지만, 결국 320억원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시의회가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과거 만연했던 쪽지예산, 지역구 민원 예산 등을 포기하는 등 배수진을 친 점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김호평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아마 쪽지예산 없이 예결위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 같다. 어떤 예산이 더 가치있는지에 집중하다 보니 위원들 간에 합의가 잘 안됐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1090개 시민·사회단체의 연합체인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의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은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오세훈 예산’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의원들 개개인의 예산 편성 관행을 내려놓으면서 나름대로 원칙있게 대응하며 서울시 2022년 예산안을 지켜냈다. 서울시의회는 이번 의정 활동의 가치와 성과를 잊지 말고,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향후 오세훈 서울시정의 예산 집행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번 예산안에서 애초 시가 편성하지 않았던 코로나19 생존지원금 8천억원이 시의회 제안으로 편성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재원은 △소상공인 월세지원금(80만원) △관광업 위기극복자금 △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 긴급생계비 △시 직영 코로나19 검사소 자치구 확대 △중증환자 등 병상 추가확보·운영 등에 쓰일 예정이다. 서울시 한 간부는 “오 시장은 상생방역·자가검사키트 도입 등 논란으로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엔 시의회 요구를 들어주는데 부정적이었지만 여론 등을 고려해 수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오 시장은 지난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지난해 서울시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반발과 저항이 있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조금씩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드시 서울시를 바로 세우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과거 민주당과 시민사회진영을 자극했던 ‘에이티엠(ATM·현금인출기)’, ‘다단계’, ‘피라미드’ 등 자극적인 어휘는 없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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