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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잘라도 되는 나무는 없다”…가로수 가지 ‘싹둑’ 이제 그만

등록 2022-02-08 14:24수정 2022-02-08 15:09

서울환경운동연합, ‘올바른 도시나무 가지치기 안내서’
‘낙엽쓸기 귀찮다’ ‘전선에 방해된다’ 이유로 근본적 훼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경기 안양 범계-평촌대로 가로수, 인천 강화성당 은행나무, 경남 함양 안의초교 학교나무, 경기 안양예술공원로 가로수. 서울환경연합 제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경기 안양 범계-평촌대로 가로수, 인천 강화성당 은행나무, 경남 함양 안의초교 학교나무, 경기 안양예술공원로 가로수. 서울환경연합 제공

“제가 3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이 나무는 이렇게 잘라줘야 더 잘 자랍디다.”

지난해 봄 굵은가지 서너개만 간신히 남기고 죄다 잘라내어 뭉뚝해진 가로수들을 보고 한 구청 담당 공무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되돌아온 답이다. 정말 그럴까? 막 잘라야 잘 자라는 나무가 따로 있는 걸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런 나무는 있을 수 없다. “강전정에 비교적 강한 수종은 있지만, 조금 더 잘 버틸 뿐이고 가지치기란 살아있는 생명의 일부를 잘라내는 집도행위로 잘못된 가지치기는 나무를 죽일 수 있”(이홍우 아보리스트)기 때문이다. 가로수와 관련된 이런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없애자며,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최근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한 작은 안내서’(이홍우·김레베카 공저, 장자인 그림)를 냈다. 정부·지자체의 ‘도시나무 행정’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지적하고, 도시나무를 ‘재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이자,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녹색인프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대대적인 가지치기가 이뤄지는 늦겨울~봄(2~5월)을 앞두고, 이런 노력이 얼마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도시나무 현실은 ‘일상적 생태홀로코스트’”

기존 가로수 관리와 관련한 규정은 ‘가로수 조성 및 관리 규정’(산림청 고시), ‘가로수 수형관리 매뉴얼’(산림청 발행)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지치기 방식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칠 뿐, 가지를 얼마나 잘라야 하는지 등과 같은 기본적인 기준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가로수 관리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들도 가로수 관련 조례를 마련했지만, “자연형으로 육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와 같이 느슨한 기준만 제시했다.

2020년 2월 결성돼 전국 가로수들의 가지치기 실태와 관련해 시민제보를 받아 온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김레베카 총무(환경사회학자)는 이 ‘작은 안내서’에서 지금의 도시나무 현실을 “일상적인 생태홀로코스트 지옥”이라고 규정했다.

“너무나도 많은 시민이 나무가 ‘살아있음’을 자각하고 있지 못했고, 나무를 ‘살아있는’ 대상으로서 다루는 방법에 대해 무지했으며, 따라서 나무가 ‘죽어가고 있음’도 깨닫지 못했다. 시민들은 ‘낙엽 쓸기가 귀찮다’거나, ‘차 위로 뭐가 자꾸 떨어진다’거나, ‘ 너무 크고 무성해서 위험해 보인다’는 사소하거나 이치에 전혀 닿지 않는 이유로 나무를 해치고 있었다.”

그나마 있는 지자체 조례조차 무시되기 일쑤였다. 서울시 ‘가로수 조성·관리 조례’는 ‘약전지(약한 가지치기) 위주로 실시’, ‘수형(나무형태) 조절 가지치기는 시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규정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 도시나무들은 수형을 바꿔놓는 강전지(강한 가지치기)에 노출돼 있다. 무엇보다 가지치기 담당자들이 나무를 잘 모른다. 김 총무는 “지자체에 숙련된 가로수 담당 공무원이 없다. 현장 작업자가 두절(頭切, 나무줄기 윗부분을 모두 자르는 일)을 해버려도 담당 공무원은 모르고 그냥 넘어갈 때도 잦다 “고 말했다.

특히 한국전력이 전기공사업체에 의뢰해 관리하는 전선 아래 가로수들은 지난 2020년 기준 140만5천 그루가 나무 생리에 관한 아무런 고려없이 ‘전선관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마구 잘렸다고 한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낸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한 작은 안내서’에 소개된 나무 생리 관련 삽화들. 서울환경연합 제공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낸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한 작은 안내서’에 소개된 나무 생리 관련 삽화들. 서울환경연합 제공

강한 가지치기→병해충 노출→위험한 나무→고사

이홍우 아보리스트는 “나무는 강전정을 심하게 해도 자른 즉시 죽지 않고 도장지(세차게 뻗은 연약한 가지)가 많이 뻗어 나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지를 자른 절단면은 병해충에 무방비로 노출돼 결국 썩게 된다”며 “그러다 상처 부위부터 나무줄기 중심부를 따라 나무 속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구조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져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국제수목학회(ISA)도 두절 등 과도한 가지치기를 잘못된 방식으로 규정한다. 가지치기를 통해 줄기의 25% 이상을 제거하면 나무의 에너지 생산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해 굶주리게 할 수 있으며, 직사광선을 막아주던 잎이 제거돼 수피(나무껍질)가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강전정으로 인한 큰 가지 절단면 상처는 아물기 어렵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안내서에서 지적하는 나무와 관련된 ‘잘못된 상식들’은 여럿이다. ‘나무가 크면 위험하다?’, ‘가지를 잘라야 더 잘 자란다?’, ‘자른 부위에 상처도포제를 바르면 문제없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 아보리스트는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라면 높이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나무 건강은 잎과 수피 상태, 상처회복력, 해당 터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무 한 그루는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스스로 성장을 조절한다. 임의로 가지 하나를 자르면 자른 부분의 성장은 감소하고 다른 부분의 성장이 증가한다. 가지치기할 때 이런 나무 반응을 잘 활용하면 나무에 구조적인 결함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며 “아울러 상처도포제 효과와 관련해서는 그간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상처 회복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쪽이 우세하다”고 덧붙였다.

“도시나무, 잿빛 도시 구할 녹색인프라…재평가 시급”

도시나무들에 대한 재평가도 시급하다. 안내서는 “나무와 숲이 잿빛 도심 속에서 맡아 하는 역할은 인류세 말기 기후위기 시대에 더더욱 막대한 중요성을 가진다. 도심 녹지는 도시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고 기존의 낡은 내연기관 관련 시설을 대체할 최상의 방법론이자 녹색 인프라”라며 “나뭇잎이 넓을수록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햇빛을 막아 그늘을 만든다. 또 증산작용을 통해 공기 중 습도를 유지해 준다. 나무가 크고 건강할수록 기대할 수 있는 이점이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6월 카카오가치같이에서 394명이 기부한 407만3900원과 (재)숲과나눔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이 ‘작은 안내서’는, 누구나 서울환경연합 자료실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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