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이 17일 서울시청에서 보건복지부와 진행하는 ‘영케어러 특수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대문구청 제공
지난해 5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던 20대 청년이 생활고를 이유로 아버지를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 발굴에 나섰다.
서울 서대문구는 17일 서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보건복지부와 함께 9∼24세 세대원이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12월 한달 동안 가족돌봄청년 발굴 조사를 진행해, 가족돌봄청년 6명과 가족돌봄청년이 될 가능성이 있는 29명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서대문구는 공과금 체납, 금융 연체 기록 등을 바탕으로 전화·우편연락·가정방문 등을 통해 이들을 확인했다. 보건복지부와 서대문구는 3월부터는 학교,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대학교, 청년센터 등과 연계해 추가 확인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발견된 35명 가운데 한부모가정 자녀가 25명이었다. 흔히 한부모가정이라고 하면 젊은 한부모와 어린아이만 떠올리는데, 한부모가정 부모는 나이가 들어 쉽게 병드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청년기에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돌봄 청년 문제가 심화한다는 걸 숫자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서대문구는 지난해 대구에서 20대 청년이 치료비와 생활비를 견디다 못해 아버지에 대한 돌봄을 포기한 사례를 참고해 이번 사업을 설계했다.
서대문구는 발굴된 가족돌봄청년을 상대로 80여종 복지서비스 항목을 놓고 하나씩 확인하면서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특수한 상황이어서 복지서비스 수혜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우엔 ‘100가정 보듬기’라는 후원자 연결 시스템과 연계하기로 했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이 자립할 때까지 매월 10만∼50만원씩 후원받는 제도로, 서대문구는 그동안 750가구에 총 41억원 기부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또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병원 5곳과 연계해 위기상황 환자가 퇴원할 때는 ‘장기요양보험’ ‘긴급돌봄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도록 구 지역돌봄팀과 논의하도록 했다. 대구 돌봄청년은 퇴원한 아버지를 어쩔 수 없이 돌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수완 보건복지부 청년정책팀 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서대문구를 시작으로 시범사업에 동참하는 자치구들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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