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무개 경영기획부장이 지난해 8월9일 오후 5시57분 사내 메신저 ‘잔디’를 통해 서류채점 담당자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 서류채점 결과가 조정돼 서류채점에서 기준점수에 미달했던 전아무개씨는 81점으로 합격하고, 기준점수인 80점을 넘었던 지아무개씨는 점수가 74점으로 뒤바뀌어 탈락했다. 청년활동지원센터 노동조합 제공
오세훈 시장 취임 뒤 위탁운영 법인이 바뀐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청년지원센터) 부정채용 의혹이 서울시 자체 조사 결과 확인됐다. 지난해 7~9월 공개채용 과정에서 내정자를 선발하기 위해 서류전형 점수를 조작하거나 규정을 어겨가며 센터장이 채용심사에 참여해 전 직장 동료들을 뽑는 등 비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년지원센터는 서울시가 선정한 위탁법인이 채용 등 센터 운영을 관리감독하기에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이 주목된다. 앞서 해당 센터의 신임 센터장 전아무개씨는 직원에 대한 갑질·막말 논란에 휩싸여 지난해 12월1일 서울시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16일 서울시와 청년지원센터 노동조합의 얘기를 종합하면, 지난해 7월22일 청년지원센터는 ‘제3차 긴급 공개채용’(긴급채용)을 공고해 8일 만에 윤아무개 전략경영실장(조직개편 뒤 경영기획부장), 정아무개 기획팀장, 신아무개 사업1팀장 등 3명을 선발했다.
정 팀장은 서류전형 합격 기준인 ‘서류채점 80점 이상’보다 낮은 점수인데도 합격했다. 서울시 시민감사위의 감사에서 정 팀장은 센터 위탁법인 ㈔한국디지털컨버전스협회 직원으로 확인됐다. 또 윤 실장과 신 팀장은 전 센터장과 영등포청소년센터에서 각각 3년과 2년 함께 근무한 사이였다. 두 사람 채용 당시 전 센터장은 면접위원으로 참여했다.
취임 직후 오 시장은 전임 시장 시절 민간위탁 사업에 대해 “그들만의 리그”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청년지원센터의 위탁법인을 지난해 7월 ㈔마을·㈔일촌공동체에서 서울현대교육재단·한국디지털컨버전스협회로 바꿨다. 그 후 영등포청소년센터장 출신인 전씨가 청년지원센터장이 됐고, 센터 쪽은 긴급채용 공고 1주일 전에 윤 실장 등 3명을 특별채용하겠다며 서울시에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전 센터장이 자신의 남편 채용에 간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 센터장은 직전 직장인 영등포청소년센터 동료인 신아무개씨를 지난해 8월 ‘제3차 일반 공개채용’(일반채용)에서 청년지원센터 실장급으로 선발했는데, 신 실장 후임으로 전 센터장 남편이 채용됐다. 신 실장은 자신의 후임 선발 과정에서 서류전형 심사위원이었다. 전 센터장 남편은 서류전형을 유일하게 통과해 최종합격했다. 그리고 전 센터장은 신 실장이 채용될 때 면접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신 실장(현재 통합사업부장)은 현재 공석인 청년지원센터 센터장 직무대행이다. ‘서울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 관리지침’엔 “채용심사위원은 이해당사자로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관계나 사정이 있는 경우 참여를 제한한다”고 돼 있다.
응시자 점수 조정 등 채용 원칙을 무시한 난맥상도 드러났다. 지난해 8월9일 오후 5시57분 사내 메신저 ‘잔디’를 보면, 윤 경영기획부장이 서류채점 담당자에게 서류합격자 명단을 전달하며 “팀장 지원자 지아무개, 사업1팀원 전아무개님 서류채점 조정해 주세요”라고 지시한다. 결국 기준점수 미달이던 전씨의 점수는 81점으로 조정됐다. 이 과정에서 기준점수인 80점이 넘었던 지씨는 74점으로 바뀌었고, 결국 탈락했다.
한 분야 탈락자를 다른 분야로 바꿔 합격시킨 사실도 적발됐다. 지난해 9월 공고된 ‘제5차 일반 공개채용’에 교육연구팀장에 지원했던 안아무개씨가 지역지원1팀장으로 선발됐다. 당시 지역지원1팀장 자리엔 서류 합격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럴 경우 재공고가 원칙이지만 센터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9월28일 공고된 ‘제6차 일반 공개채용’에선 기획전략팀 지원자 중 유일한 서류채점 통과자인 김아무개씨가 탈락하고 다른 응시분야의 차점자가 대신 합격했다. 청년지원센터 채용 공고에는 “심사지표에서 최고점을 받아야 합격자로 확정된다. 필요하면 2등(차순위 득점자)에 한해 ‘차순위 합격자’로 선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시민감사위는 임의로 응시 분야를 바꿔 합격자를 선정한 건 채용 공정성을 결여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시민감사위는 지난달 말 “위탁법인인 서울현대교육재단 및 한국디지털컨버전스협회에 기관경고를 하고, 현재 직무정지 상태인 센터장을 교체할 것”을 통보했다. 시민감사위는 이의신청을 받은 뒤 조치 사항을 확정할 예정이다. 다만 시민감사위는 이 사안을 수사의뢰할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인성 서울시 청년공간운영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채용 부적정이 확실하며 서울시 지도감독이 소홀한 것을 인정한다”며 “다만 (위탁)법인 쪽은 이의제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서울시가 채용 심사위원을 추천하고 제척·기피 사유를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김철희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고발 여부에 대해 “(감사 결과 확정 전이라) 아직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위탁법인 쪽과 센터장 직무대행에게 지난 8일부터 수차례 전화·문자로 연락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다만 시민감사위 조사 과정에서는 “(센터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것만으로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 사안과 관련해 김정은 청년지원센터 노조위원장은 “억울한 채용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다. 위탁법인이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시민감사위 감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케이티(KT)에 딸을 부정 채용시킨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된 바 있다.
청년지원센터(정원 34명, 지난해 예산 14억8500만원)는 청년 진로 탐색, 마음건강 지원, 청년수당 지급 등의 업무를 시에서 위탁받아 2016년부터 운영돼왔다. 자치구별 청년활동지원센터를 지원하고 교육·평가하는 일도 해왔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