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오후 서울 중현초등학교에서 서울 임대주택 혁신 방안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임대주택 정책 기조를 ‘물량 늘리기’에서 ‘품질 높이기’로 바꾼다. 현재 8%에 불과한 60㎡(약 18평) 이상 중형 평형 비중을 30%로 높이고, 민간 아파트처럼 피트니스·수영장 등 커뮤니티시설도 확충하기로 했다. 30년 이상 된 노후 임대아파트의 재건축도 적극 추진한다.
18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건축 사업이 추진 중인 노원구 하계5단지를 찾아 이런 내용의 ‘임대주택 3대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오 시장은 “과거와 같은 물량 늘리기 방식에서 벗어나 임대주택의 품질을 개선하고 임대주택에 짙게 드리웠던 차별과 편견의 그림자를 걷어냄으로써 누구나 살고 싶고, 누구나 부러워하고, 누구나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임대주택의 시대를 열어야 할 때”라며 “저소득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을 넘어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임대주택으로 혁신해가겠다”고 말했다.
“서울 임대주택 40㎡ 미만이 58.1%…일본·영국 비중의 2배”
먼저 시는 ‘임대아파트=좁은 집’이라는 인식을 깨고자, 향후 5년간 건설 매입으로 공급할 예정인 임대주택 신규물량 12만호 가운데 30%를 60㎡ 이상 평형으로 채울 계획이다. 현재 서울 임대주택의 58.1%가 40㎡(약 12평) 미만으로, 이는 일본(23.7%), 영국(26.5%) 등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시 설명이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담당자는 “임대주택 입주자 10명 중 7명이 60㎡를 원하지만 공급량은 8%밖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민간 분양아파트처럼 인테리어는 조리대와 거실이 마주한 ‘아일랜드 주방’으로 조성하고, 시설물 교체주기로 단축한다. 도배장판은 10년에서 6년으로, 싱크대는 15년에서 10년, 창틀·문은 30년에서 20년으로 각각 줄인다. 또 피트니트센터·수영장과 펫 파크 등 반려동물 친화시설, 아파트 최상층 라운지 등도 조성하기로 했다.
또 임대 세대와 일반 세대 간의 차별을 없애고자 임대세대도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에 ‘공동주택관리법’ 개정 건의하기로 했다. 또 다른 임대주택으로 이사하는 제도인 ‘주거이동’ 제도도 개선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결혼·생업유지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허용해 해당하는 임대세대가 0.1%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는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주거이동’이 가능해진다.
준공 30년 지난 24개 임대단지 단계적 재정비 추진
시는 이와함께 2026년 준공 30년을 경과한 임대주택 24개 단지(3만3083호)에 대한 단계적인 재정비를 추진한다. 시는 첫 재정비 대상지로 1989년 입주한 하계5단지를 선정, ‘고품질 임대주택 단지’ 모델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또 준공 30년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15∼30년 된 단지 7만5천호를 대상으로 리모델링도 추진한다.
다만, 이런 서울시 방안에 대해 한정된 재원에서 임대주택의 고품질화를 추진하다 보면 정작 집 문제로 고통받는 주거 빈곤층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최은영 도시연구소장은 “(임대주택 중형평형을 늘리면)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다. 물량과 보완관계가 있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3∼4인 가구 쪽에 비중을 두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라며 “더구나 서울에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지하·쪽방·고시원 등 국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인 14㎡ 미만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이 임대주택 정책을 정하는데 최우선 고려대상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10월 행정안전부 다중이용업소 통계를 보면 서울에 있는 고시원 수는 6150곳으로 전국의 51.7%를 차지한다.
“‘주거’ 아닌 곳에 사는 시민도 많은데 ‘중산층 중심 임대주택’ 정책 잘못”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도 “정책이란 결국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 문제인데, 이번 방안을 보면 서울시 임대주택 정책이 주거극빈층이나 (법적으로) 주거가 아닌 곳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에서 ‘중산층’으로 이동한 느낌이 강하다. 전용면적 18평이면 공용면적을 더하면 25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중산층까지도 임대주택으로 포섭하고 그러면서 질까지 높이면 좋겠지만, 우선순위를 넓은 평형에 맞추는 건 너무 빠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강수 대구카톨릭대 교수(경제학)도 “방향은 합리적”이라면서도 “임대주택의 총량, 특히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이 많아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30년 이상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중이 20∼30%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4%대에 불과하다. 전체 비중을 안 들리고 ‘퀄리티’에 집중하면 진짜 저소득층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선수 주택정책과장은 “서울 전체 주택의 10% 정도가 임대주택이고 이는 경제협력개발평균인 7%보다도 높다. 열악한 주거가 계속 문제 되는 상황에서, 그래도 정부가 마련해준 임대주택인데 누울 데 마련해 줬으니 만족하라고 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며 “물량공급과 별개로, 지금쯤이면 품질개선 쪽으로 정책을 바꿀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