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행동영등포당원들이 지난해 10월17일 지역에서 창당대회를 열고 있다. 직접행동영등포당 제공
“지역문제 해결과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해 만든 정당인데, 지방선거에 후보도 못 낸다는 게 말이 되나요?”
풀뿌리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용희씨는 지난해 10월17일 주민 30여명과 함께 풀뿌리 지역정당인 ‘직접행동영등포당’ 창당대회를 연 뒤 이튿날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 등록 신청을 했다. 결과는 퇴짜였다. 선관위 답변은 간단했다. “정당법엔 지역정당에 관한 규정이 없다.”
이씨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정당법 일부 조항이 정당 설립과 가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생각해서다. 이번 6·1 지방선거에 영등포 구의원 출마를 염두에 뒀던 이 대표는 헌법소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당법 해당 조항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풀뿌리 지역정당 허용 논란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현행 정당법은 서울을 포함한 5개 이상 광역자치단체에 시·도당을 두고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둬야 ‘정당’으로 인정한다. 5·16 군사반란 직후인 1962년에 만들어진 이 조항 때문에 한국에는 지역정당이 명함조차 내밀 수 없다. 선거 후보 등록은 물론, 광고·벽보·인쇄물·방송 등에도 정당 이름을 쓰면 안 된다. 심지어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 대표는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근 지하철역에서 (정당 이름이 적힌) 명함을 나눠주는데 선관위에서 문제제기가 들어왔다”며 “영등포 구민들한테 우리 당을 알리는 것조차 너무 어렵다”고 털어놨다.
나영 은평민들레당 대표가 1월18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 등록 서류를 내고 있다. 서울시 선관위는 정당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반려했다. 은평민들레당 제공
선거에 참여하려는 지역정당 소속 당원의 현실적 선택지는 ‘무소속 출마’뿐이다. 하지만 이는 지역정당을 알리고 활성화하려는 목표를 가진 이들이 쉽게 택하기는 어려운 카드다.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자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역정당 운동이 변질된다는 의견이 더 많아서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은평구에서 지역정당 운동을 하는 은평민들레당 나영 대표의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지난해 12월19일 창당한 과천시민정치당은 고심 끝에 무소속으로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지역정당의 제도권 진입 시도가 꾸준한 데는 중앙집중적인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지역구 국회의원이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공천까지 쥐락펴락하는 구조에선 지역 목소리가 정치 현장에 반영되기 어렵다. 실제 지역자치에 책임을 져야 하는 단체장 등이 중앙의 요구에 쉽사리 휘둘리는 게 현실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갈등이 발견되고 투쟁이 이뤄지는 곳은 지역인데, 모두 중앙 중심 양대 정당에서만 정치적으로 다뤄지다 보니 양대 정당을 통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얘기를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정당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천시민정치당 당원들이 지난해 12월19일 창당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과천시민정치당 제공
지역정당 허용을 뼈대로 한 정당법 개정안은 그간 여러 차례 국회에 제출되었다. 하지만 ‘군소정당 난립 우려’라는 논리에 막혀 번번이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직접행동영등포당의 헌법소원을 대리한 이덕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군소정당 난립이란 말 자체가 반지성주의적이고 반민주, 반공화국 표현”이라며 “(설령 정당법 개정으로)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그건 지역 주민들이 풀어야 하는 문제이며 그게 민주적 과정”이라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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