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8월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다시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 논쟁에 불이 붙었다.
불씨를 던진 건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지난달 27일 오 시장은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의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며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값싼 노동력을 수입해 육아 난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현재 국내 외국인 육아 도우미는 방문취업 자격(H-2 비자)으로 입국한 외국 국적 동포(주로 중국 동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 시장 발언은 이들 동포 외에 신규 외국인 인력을 돌봄 시장에 들이자는 말로 풀이된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가사·돌봄 시장 외국인력 고용’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를 한차례 검토한 바 있다.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 이상임 과장은 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선 추가적인 연구·검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지난해 6월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 정부 인증 의무를 부여하고 해당 기관과 근로계약 맺은 노동자에 한해 노동법상 권리를 인정한 ‘가사근로자법’ 제정을 계기로 앞서 언급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사단법인 한국고용복지연금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제출한 보고서 ‘가사·돌봄 시장의 인력수급 현황 분석 및 외국인력 고용 등에 관한 연구’(이하 ‘정부 보고서’)의 결론은 한마디로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한국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을 동일하게 처우하므로 이용자 부담 문제보다는 인력수급 부족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사·돌봄 잠재 인력은 부족하지 않지만 처우가 나빠 인력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므로 외국인력 도입에 앞서 처우 개선 등으로 유휴인력(내국인과 체류 외국인)을 먼저 일터로 나오게 해야 한다’고 요약된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오 시장이 언급한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약 25만5800명(2018년 6월 기준)이다. 홍콩과 일본도 각각 20만명(2018년 기준), 1000명(2019년 기준) 정도가 일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최저임금을 8개 각 파견 국가(출신국)와 협의해 결정한다. 최근 외국인 가사 도우미 월급은 650SGD(약 64만6천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6만4010달러(2021년 기준)로 한국(3만4980달러)의 거의 두 배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임금은 매우 낮은 편이다.
다만 고용주(이용자)는 임금 외에도 보험과 세금 비용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싱가포르 노동부 누리집을 보면, 현재 ‘입주 외국인 가사 도우미’ 고용주는 한 달 고용세로 300~450SGD(약 30만~45만원)를 내야 한다. 단 16살 미만 자녀, 67살 이상 고령층, 장애인이 있는 가구는 월 60SGD(약 6만원)다. 고용주는 의료보험(연 1만5천SGD 이상 보장)과 상해보험(연 6만SGD 이상 보장), 독립된 방, 음식, 본국 송환 항공료 포함 교통비, 불법 고용 시 벌금 등도 부담해야 한다.
정부 보고서는 “해외 사례를 보면, 외국인 가사·돌봄 인력 임금을 내국인과 차이를 둬 낮게 정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고용주가 지불해야 하는 상해보험, 건강보험, 정부 대상 보증금 등이 증가하거나 더 엄격한 고용주 요건을 적용하는 추세로 강화돼 낮은 인건비는 큰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가사·육아 도우미를 도입할 때 가장 고려할 점은 ‘공식적인 등록과 제도 시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 노동력 착취, 불법체류 등의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먼저 도입한 대부분 나라가 이주 가사·근로자 인권 문제로 심각하게 비판받아 왔고, 그 과정에서 공식적인 노동 허가 절차를 마련하고 고용주에게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는 조처를 했지만 여전히 인권 침해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값싼 노동력’이란 관점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주민이니까 임금을 덜 줘도 된다는 오세훈 시장의 발언은 국적에 따른 차별적인 시각을 드러낸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며 “이주 가사노동자 임금이 낮게 형성되면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내국인 가사노동자 노동 조건도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2017년 11월 ‘이주 가사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쓴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2011년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하기 30여년 전에 만든 싱가포르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는 지금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전세계적으로 가사노동자 권리가 이슈가 되고 각국 정부가 협약 비준에 나서는 상황에서 ‘낮은 인건비’라는 이점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제노동기구 ‘가사노동자 협약’ 비준 국가는 35개 나라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모두 비준하지 않았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업무 범위가 굉장히 넓지만 근로시간 규제는 제대로 안 된다. 인권과 노동자 보호 관점에서 우리가 벤치마킹할 곳인지 의문이다”라며 “외국인 고용 정책은 사회적 비용이 뒤따라 오는데, 그냥 싸니까 도입하자는 건 적절치 않다. 어떤 공급자가 어떤 수혜자에게 편익을 줄 수 있는지부터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가사·돌봄 노동자 규모를 내국인 30만~60만명, 외국인 3만~8만명으로 추정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사·육아 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은 거주(F-2), 재외동포(F-4), 영주(F-5), 결혼이민(F-6), 방문취업(H-2) 등 총 5종이다. 외국인 가사·육아 도우미 대다수는 방문취업 자격으로 들어온 중국 동포들이다. 이들은 가사·돌봄 시설 취업은 제한되지만 개인 가사·육아 도우미(가구 내 고용활동)나 개인 간병인으로는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 도우미로 일하기 때문에 가사근로자법과 근로기준법 적용은 받지 못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비전문 취업 자격(E-9) 외국인은 아예 해당 직종에 종사할 수 없다. 가사·육아 노동은 언어 소통 능력이 중요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 이상임 과장은 “언어 소통 문제 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 현재 중년·고령층 여성 종사자가 많은 가사 노동시장에서 신규 외국인력이 들어와 일자리를 잠식할 가능성, 다른 일자리와 비교될 만한 저임금 상황이 유지될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또 “방문취업 자격 소지자들은 대부분 본인 주거지가 있지만 비전문 취업 자격 소지자들은 상대적으로 체류 기간이 짧아 회사 기숙사 등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가사·육아도우미로 유입하려면 다른 나라들처럼 주거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사근로자법 시행 후 가사·돌봄 노동 시장 변화도 지켜볼 일이다. 정부 보고서는 ‘법 시행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되고 근로자로서 위상이 높아지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외국인력도 이 일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신규 외국인력을 유입하기에 앞서 먼저 내국인력을 활용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내국인 가사노동 시장 자체로도 몇 년간 과도기를 맞게 될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력을 유입한다는 것은 시장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영미 대표는 “외국인력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정확히 어디에서 누가 필요로하는지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정부 정책은 공공 가사·돌봄 서비스를 확대해 내국인 고령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고 말했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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