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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한 마리 내려왔어요…서울 아파트서 펼쳐진 구조 작전

등록 2022-11-18 06:00수정 2022-11-18 08:02

지난 16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너구리. 김선식 기자
지난 16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너구리. 김선식 기자

“야외에서 아이를 몰아 구조할 땐 최소한 두명은 출동해야 해요.”

강지윤 서울시야생동물센터(이하 ‘센터’) 동물보건사(이하 ‘보건사’)가 집게발이 달린 장대를 꺼내며 말했다. 옆에 있던 김채연 재활관리사(이하 ‘재활사’)는 잠자리채 모양의 대형 그물망과 동물 보관용 가방을 챙겼다. 강 보건사가 말한 ‘아이’는 너구리다.

지난 16일 오후 1시40분,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너구리 출몰 신고가 들어와 강 보건사와 김 재활사가 출동했다. 신고한 주민 임정주(33)씨는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책하다가 강아지처럼 생긴 동물이 피부를 계속 긁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너구리였다”며 “얼른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서 신고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옆 야산 덤불 속으로 숨은 너구리를 구조하기 위해 강지윤 서울시야생동물센터 동물보건사가 접근하고 있다. 김선식 기자
아파트 옆 야산 덤불 속으로 숨은 너구리를 구조하기 위해 강지윤 서울시야생동물센터 동물보건사가 접근하고 있다. 김선식 기자

“저기예요. 저기 보이시죠?” 반려견 몰티즈를 품에 안은 임씨가 아파트 외벽 아래 화단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단 대리석 위에 앉은 너구리 한마리가 천연덕스럽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김 재활사가 그물망을 들고 천천히 다가가자 이를 눈치챈 너구리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옆 동 화단까지 달려간 김 재활사가 그물망을 뻗었지만, 너구리는 잽싸게 피해 아파트 옆 야산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두 구조대원이 덤불 속에 들어가자 너구리는 요리조리 피하며 안쪽으로 더 파고들었다.

어느 순간 너구리가 산 아래 아파트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아래에서 대기한 강 보건사가 전속력으로 따라붙었다. 이내 처음 듣는 짐승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산 아래 콘크리트 배수로에서 강 보건사가 두 손으로 너구리 목을 제압하고 있었다. 40여분의 추격전은 그렇게 끝났다. 강 보건사는 숨을 몰아 쉬며 “이 아이는 병에 걸려 활력이 떨어진 상태라 잡을 수 있었지만 건강한 너구리는 10명은 달라붙어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너구리 구조에 성공한 강지윤 보건사. 김선식 기자
너구리 구조에 성공한 강지윤 보건사. 김선식 기자

너구리 등은 심하게 털이 빠져 살가죽을 드러냈다. 강 보건사는 “겨울철이 가까워지면 너구리들이 개선충증에 많이 걸린다. 이 아이는 각질이 다 벗겨지고 치유해가는 과정 같다”고 말했다. 개선충증 증상은 심한 가려움증, 탈모, 피부염 등이다. 은신처에서 무리생활하는 너구리는 개선충 감염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센터에 따르면 너구리 구조 요청은 매년 9월부터 연말 사이에 몰린다고 한다. 지난해 센터가 집계한 81건의 너구리 구조 사례 가운데 37건이 9~12월에 접수됐다. 센터는 야생동물 치료와 방생을 목적으로 구조활동을 한다. 강 보건사는 “9월부터 겨울철까지는 개선충 질병에 걸린 성체 구조 요청이 많고, 여름철엔 새끼들 교통사고나 미아 신고가 많다”고 말했다. 하민종 센터 수의사는 “너구리는 개과 동물 중 거의 유일하게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라며 “너구리들이 동면을 위해 모여 있다가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동면 중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영양분 보충을 위해 먹이활동을 나왔다가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걸려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날 구조된 너구리는 서울시야생동물센터로 옮겨졌다. 김선식 기자
이날 구조된 너구리는 서울시야생동물센터로 옮겨졌다. 김선식 기자

이날 구조된 너구리는 생후 5~6개월 된 몸무게 6~7㎏의 성체였다. 강 보건사는 “센터에서 3개월 남짓 치료·회복 기간을 거쳐 인적이 드문 산으로 방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너구리를 만나면 가까이 가지 말고 건드려도 안 된다. 반려동물이 짖으면 너구리가 위협을 느껴 공격할 수 있으니, 반려동물과 산책할 땐 가급적 안고 있는 게 좋다”고 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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