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ㄱ(32)씨가 2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경기도 고양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에서 함께 살던 여성을 살해한 뒤, 60대 택시기사까지 집으로 불러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ㄱ(32)씨의 범행을 둘러싸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동거 여성을 살해한 집에서 넉 달 넘게 태연히 거주한 것은 물론, 옷장에 주검을 넣어두고 여자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등 보통의 살인 용의자와는 다른 특이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28일 경기도 일산동부경찰서의 말을 종합하면, ㄱ씨는 지난 20일 밤 경기도 고양시내에서 택시와 접촉사고가 나자 ‘교통사고 합의금을 준다’며 파주시 한 아파트로 택시기사를 유인해 사건 당일 살해했다. 경찰은 ㄱ씨가 숨진 택시기사의 신용카드로 5000여만원을 사용한 혐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용카드 등으로 수천만원이 넘는 대출을 받기 위해선 카드 비밀번호뿐 아니라 여러 차례의 본인 확인과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건 당일 “합의금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ㄱ씨의 진술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또 ㄱ씨는 범행 후 아파트에서 600m가량 떨어진 인근 공터에 피해자의 택시를 버리고 블랙박스 기록을 삭제했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치밀한 행동이다.
그러나 ㄱ씨는 정작 살인의 가장 결정적 증거인 택시기사의 주검을 집 옷장에 며칠씩 넣어두고 여자친구까지 초대했다. 강력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관은 “증거를 없애고도 주검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최대한 범행 장소를 감추려는 게 범인의 특성인데, ㄱ씨의 행동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의 한 강가에서 경찰이 살해당한 50대 여성의 주검을 찾기 위해 수색 중이다. 앞서 지난 25일 파주시 자신의 아파트에서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ㄱ씨는 지난 8월 초 동거하던 50대 여성을 살해해 이 일대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연합뉴스.
경찰은 흉악 범죄를 저지른 ㄱ씨의 행동 패턴에 특이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미 피살된 동거녀와 택시기사 이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등을 밝혀내기 위해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ㄱ씨를 추궁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찰은 29일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ㄱ씨가 택시기사 이외에도 지난 8월 함께 살던 50대 동거녀도 살해했다고 자백함에 따라, 이틀째 여성의 주검을 수색해온 경찰은 28일 오후 육상 수색을 중단했다. 수색 지역이 한강 하구 일대여서 유실 지뢰에 의한 폭발사고 위험이 있다는 군의 통보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드론 등을 이용한 공중 수색과 수중 수색만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ㄱ씨로부터 범행 시점과 주검 유기 장소 등을 자백받은 상태이지만, 사건 발생 시점이 오래된 데다, 한파 등으로 수색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살인 및 사체은닉 등 혐의를 받고 있는 ㄱ씨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 도착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범행 동기와 추가 범행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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