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새벽 3시50분에 서울 노원구 상계동 기점을 출발한 8146번 버스 첫차 내부. 승객들이 기존 146번 버스보다 한층 여유롭게 하차하고 있다.
“첫차는 시간 다투는 사람들 말고는 안 타. 일분일초라도 빨리 가려는 사람들이지.”
새벽 전용 8146번 버스의 첫 운행일인 16일 새벽 3시40분. 정남희(69)씨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 기점 정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차 출발 예정 시각보다 10분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청소노동자인 정씨는 지난 6년간 146번 시내버스 첫차를 타고 선릉역 부근의 한 건물로 출근해왔다. “일은 새벽 6시에 시작하지. 근데 그때 나가면 사무실 사람들 출근하기 전에 절대 일을 못 끝내. 그러니 우리 같은 사람들한텐 앞당겨진 15분이 정말로 소중할 수밖에.”
서울시는 상계동과 강남역을 오가는 146번 버스 운행 구간에 새벽 전용인 8146번 버스를 이날부터 운행하기 시작했다. 146번은 강남 지역 빌딩이 일터인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했다. 새벽 승객이 많아 첫차 출발 시각인 새벽 4시5분에 버스 3대가 동시에 출발하던 노선이다. 신설된 8146번은 146번과 같은 노선을 오가지만 15분 더 이른 새벽 3시50분에 첫차가 출발한다. <한겨레>는 이날 8146번 첫차를 타고 강남까지 출근하는 노동자들과 동행했다.
8146번 첫차 승객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었다. 정남희씨는 “열에 예닐곱은 나처럼 빌딩 청소하는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며 낯을 익힌 승객들은 같은 학급 친구들 같았다. 자리 하나를 돌아가며 나눠 앉고,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받아주고, 이날따라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안부를 걱정했다. 서울의 남북 끝을 오가는 내내 버스 안에선 도란도란 대화가 이어졌다.
이날의 화제는 8146번 버스가 원래 있던 146번 버스보다 얼마나 더 빨리 도착하는지였다. 지난 8년간 146번 첫차를 타고 봉은사 인근으로 출근해온 김순애(가명·66)씨는 “지난주까지는 차에서 내리면 출근시간 맞추느라 숨이 꼴딱 넘어갈 때까지 마스크를 벗고 달렸다. 이 버스가 생기니 다들 좋아서 난리가 났다. 뛰지 않아도 되니까”라며 활짝 웃었다.
16일 새벽 3시55분에 서울 노원구 상계동 기점을 출발한 8146번 두번째 버스가 신논현역에서 회차하는 모습.
앞당겨진 15분은 승객들에게 출근 시간의 여유만 가져다준 게 아니었다. 중계역에서 차에 올라 청담동 일터로 향하던 최은심(가명·60)씨는 “146번 출발 시간을 조금만 당겨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할 때마다 ‘대신 엔(N)버스를 타라’는 말을 들었다. 엔버스는 일찍 출발하지만 차비가 비싸 매일 타기엔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146번 버스와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올빼미버스 엔13번의 막차는 146번 첫차보다 40분 이른 새벽 3시25분에 출발한다. 그러나 가격이 2150원으로 일반 시내버스보다 950원 비싸다. 매일 엔버스를 타려면 한달에 2만원 정도를 더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중계역, 하계역을 지나 면목동에 이를 때까지 승객을 줄곧 태우기만 하던 버스는 영동대교를 지나 강남에 진입한 뒤부터 승객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무역센터를 지난 버스가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에 이를 때마다 승객들은 다음날의 만남을 떠들썩하게 기약하며 손을 흔들었다. “언니, 내일 봐.” “그래, 이렇게 일찍 오니 오죽 좋아?”
이날 8146번 첫차를 운전한 버스기사 윤종수(68)씨는 “평소보다 여유 있는 승객들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고 뿌듯해했다. 버스가 강남역 12번 출구 정류장에 다다르자 버스 안이 텅 비었다. 오전 5시40분 신논현역에서 회차한 버스는 다음날 새벽을 기약하며 상계동으로 향했다.
글·사진 손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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