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행안부, 국가보훈처, 인사혁신처 합동브리핑에서 2023년 행안부 중점 과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정부는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위험 예측과 대비’를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지난해 10월29일 주최자 없는 핼러윈 행사에서 벌어진 이태원 참사가 ‘인파 사고 위험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 부재와 관리 미흡’ 때문에 발생했다는 자체 진단에 따른 것이다.
‘신종 위험 발굴·예측’을 강조하는 배경엔 현대 사회 재난이 갈수록 복잡화, 다양화, 대형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렸다. 폭우, 산불, 가뭄, 폭염 등 기후 위기에 따른 재난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재난까지 발생 과정과 피해 영향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운 복합 재난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12년 전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원자력 사고와 방사능 유출이 복합 재난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센터’(이하 ‘재난 발굴센터’)를 신설하기로 했다. ‘신종재난’의 예로는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소 화재나 길이 1㎞ 이상 ‘장대 터널’ 내 고속열차(KTX) 탈선, 고속도로 터널 화재,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통신시설 마비 등을 들었다. 인석근 행안부 안전기획과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기 과천 방음 터널 화재처럼) 일정 부분 위험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실질적인 예방 조처를 하지 못한 위험요소를 먼저 찾아내 분석·평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범정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티에프(TF)에 참여한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도 “새로운 위험과 재난유형의 발굴은 거대 재난이나 불확실한 재난보다는 이태원 사고와 같이 우리 생활 속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안전사고나 위험 상황이 피해가 확대되면서 재난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분석하고 관리 및 예방 방안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재난 발굴센터가 국내외 사고·재난 추이를 분석해 공유하면,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위험요소를 점검하고 다시 행안부가 이를 총괄·평가하는 체계로 운영된다. 행안부는 신종 위험을 발굴하고 나면, “신종재난 위험요소에 대한 예·경보 체계 구축, 매뉴얼 작성·관리 등 대응체계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행안부가 새로운 자연·사회 재난유형을 발굴해 각 부처를 재난 대응 주관기관으로 정하고 매뉴얼을 작성토록 해온 것과 유사해 보인다. 행안부는 2018년 11월에 ‘한파’(자연재난·행정안전부), 2019년 2, 4, 9월에 각각 ‘폭염’(자연재난·행정안전부)과 ‘자연 우주 물체 추락·충돌’(자연재난·과학기술정보통신부), ‘초미세먼지’(사회재난·환경부) 등 4개 재난유형을 추가한 바 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는 추가된 유형이 없다.
현재 정부의 ‘재난 분야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상 자연재난은 13개, 사회재난은 28개 유형이다. 정부는 조만간 ‘인파 사고’를 사회재난 유형에 포함할 계획이다. 인석근 과장은 “재난유형을 구분해 따로 관리해야 할 정도면 법 개정을 통해 유형을 추가하고, 그 정도가 아니라도 관리 필요성이 있는 재난은 각 부처나 지역 단위에서 대비 계획을 세워 예방할 계획”이라며 “재난 발굴센터 외에 행안부에도 신종재난 발굴·대비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를 따로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신종 복합 재난’ 예측·발굴과 대비은 새로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안전행정부 시절인 2013년 6월,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원과 ‘복합 사회재난 연구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11년 10월 복합재난연구실을 신설해 복합 사회재난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한 ‘복합·사회적 재난 대응 기술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엘아이지(LIG)시스템 재난안전연구소 장대원 소장은 “미래 복합 재난 ‘사전 예측’은 제3차 재난 및 안전관리 기술개발 종합계획(2018~2022)에 이미 포함된 개념으로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다만 그동안은 일방향적인 연구개발 단계의 개념이었다면 이번 티에프를 계기로 각 부처 협의를 거쳐 ‘새로운 재난 예측’이 현업에 도입되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폭염이나 한파도 새로운 재난유형에 들어가기 전 2~3년 이상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며 “각 재난 관리 매뉴얼도 만들어야 하므로 새로운 재난유형이 쉽게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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