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전동휠체어 운전연습장에서 한 교육생이 연습을 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후진하세요. 어어, 선 밟지 마시고. 여기서 우회전….”
잔뜩 긴장된 표정의 교육생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강사 지시에 따라 조종간을 움직인다. “좋아요, 좋습니다. 잘하셨어요.” 강사의 칭찬에, 교육생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스친다. 그가 타고 있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다. 바퀴가 네개 달린 전동휠체어다.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 문을 연 서울 관악구 전동휠체어 운전연습장에서 지난 23일 올해 첫 수업이 열렸다. 전동휠체어만 10년 넘게 탄 베테랑부터 이날 처음 휠체어 조종간을 잡아본 초보자까지 15명이 수업을 들으러 모였다. 교육생 가족과 병원 관계자 등 전동휠체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현장에 참관 나온 비장애인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전동휠체어 운전연습장에서 한 교육생이 후진해서 승강기에 진입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전동휠체어 운전연습장은 운전면허 기능시험장을 방불케 했다. 에스(S), 티(T), 원형 코스에 경사로 시설까지 마련해뒀다. 차량·보행자 신호등도 설치해 실제 도로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승강기 진출입에 숙달되도록 실제 규격과 동일한 승강기 코스도 바닥에 그려놓았다. 안영국 강사는 “자동차도 후진 주차 때 접촉사고가 빈번한 것처럼 전동휠체어도 후진으로 탑승해야 하는 승강기에서 사고가 잦다”고 했다. 연습장에 구비된 전동이동기구는 두 종류다. 근력 수준이 1~3단계인 사람은 한 손으로도 조작 가능한 전동휠체어를, 4~5단계인 사람은 양손 운전대가 있는 전동스쿠터를 타게 된다.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전동휠체어 운전연습장에서 한 교육생이 경사로를 오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관악구는 고령화와 장애 인구 증가로 전동이동기구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용자들의 운전 숙달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지난해 4월 연습장 문을 열었다. 지난해 하반기(9~11월) 3개 기수 53명이 교육을 이수했고, 올해는 90명을 교육할 예정이다. 교육은 3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모두 수강하면 수료증을 발급한다. 안 강사는 “처음 타는 사람도 3회 교육을 받으면 일반 도로로 나갈 수준이 된다”고 했다. 교육이 없는 날에는 누구나 연습장을 이용할 수 있다. 전동휠체어 연습자가 없을 때는 비장애인들이 인라인스케이트나 킥보드를 탈 수 있다.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전동휠체어 운전연습장에서 한 교육생이 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너는 연습을 하고 있다.
교육생들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사고로 중증 장애를 입어 전동휠체어를 타게 된 김종석(63)씨는 “실제 도로에 나가게 되면 장애물도 많고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들이 자주 벌어진다”며 “승강기를 탈 때는 좁아서 불편하기도 하고, 경사로를 지날 땐 자칫 전복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도로에 나가기 전에 연습장에서 이런 교육을 미리 받으면 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 자체가 휠체어 이용자들의 사회활동을 촉진하게 될 것이란 교육생도 있었다. 15년째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김미숙(61)씨는 “처음 탈 때는 지하철 이용하는 게 무섭고 부담돼 외출할 때마다 큰 결심이 필요했다”며 “낯선 기계와 외부 환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회활동을 꺼리는 장애인들에게 이런 교육이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장애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장애인·비장애인 구별 없이 이곳에서 교육받으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손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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