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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분당 정자교, 넉달 전 ‘양호’ 판정…“길 걷다 죽어야 하나”

등록 2023-04-05 17:15수정 2023-04-06 10:14

다리에 매달린 보행로 안전점검은 없어
“시공 부실” “상수관 파열도 의심”
탄천 가로지르는 다른 다리는 안전할까?
5일 오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보행로의 모습. 김기성 기자
5일 오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보행로의 모습. 김기성 기자

  다리 보행로가 무너져 길 가던 시민 2명이 다치고 숨진 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사고 현장에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아찔한 사고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당국의 안전불감증을 성토했다. 오아무개(56)씨는 “아파트단지와 전철역을 연결하는 다리인 데다, 다리 아래쪽에는 하루에도 수천명이 걷는 탄천 산책로와 농구장까지 있어 대형사고가 터질 뻔했다”며 “이제 불안해서 어떻게 건너다니겠느냐”고 말했다. 대학생 조아무개(23)씨도 “날마다 이 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는데 앞으로는 1㎞ 떨어진 다른 다리로 돌아다녀야 하지만, 그 다리는 안전한지 모르겠다”며 “길 걷다 죽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 내리는 날씨 탓에 보행자 평소보다 적어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왕복 6차로 교량인 정자교에서 보행로가 붕괴된 건 이날 오전 9시45분이다. 길이 108m, 폭 26m의 다리 한쪽 보행로 50여m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다리를 건너던 행인 2명이 5m 아래 탄천 둔치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ㄱ(39·여)씨는 숨지고, ㄴ(28)씨는 중태다. 이 다리 양쪽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어 평소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시민들이 많지만, 이날은 많은 비가 내려 다리나 탄천 둔치를 이용하는 시민이 적어 대형 인명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사고가 난 다리는 분당 새도시 건설 당시인 1993년 6월 완공됐다. <한겨레>가 국토교통부의 시설물통합정보관리시스템(FMS)을 확인한 결과, 정자교는 2022년 11월26일 정기안전점검을 받았을 때는 ‘양호’ 판단이 나왔다. 이전인 2021년 5월9일 정밀안전점검에서는 안전등급이 보통(C)등급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등급은 우수(A), 양호(B), 보통(C), 미흡(D), 불량(E)으로 분류된다. 정기안전점검은 A~C등급은 반기에 1회 이상, 정밀안전점검은 A등급의 경우 3년에 1회 이상, B·C등급은 2년에 1회 이상 하게 돼 있다.

문제는 이런 안전점검이 다리 상판에 매달듯 설치한 보행로에 대해선 별도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은 “붕괴된 보행로는 아파트 발코니를 확장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다리 상판과 보행로를 연결하는 철근이 비상식적으로 엮여 있었다”고 전했다.

다리 하부를 지나는 상수도관 파열이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남시의 한 관계자는 “다리에 매달려 있던 상수도관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수도관이 먼저 파열됐다면 수압으로 인해 보행로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오후 분당소방서 소방관들이 정자교 보행로 붕괴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김기성 기자
5일 오후 분당소방서 소방관들이 정자교 보행로 붕괴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김기성 기자

다른 분당 탄천 다리는 안전할까?

탄천이 남북으로 통과하는 분당구의 특성상 대형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다리는 야탑·서현·수내·황새울·백현·백궁·정자·신기·금곡·불정·돌마·미금·구미·오리교 등을 포함해 모두 24곳에 이른다. 이들 다리는 1990년대 중후반에 완공돼 30년이 넘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 다리는 최근에 진행된 정밀안전점검 때 C등급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들 상당수 다리 밑으로는 상수관 등이 매달려 있어 파열 시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2018년 7월29일 탄천 위를 지나는 분당구 야탑동 야탑10교에 설치된 수도배관이 터졌다. 당시 사고는 연일 이어진 폭염으로 도로가 내려앉으면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교각이 왼쪽으로 8도가량 기울고 아스팔트 도로 일부에 균열이 생겨 야탑사거리 일대 등이 전면통제 되기도 했다. 사고 당시 성남시는 “다리에 부속된 구조물을 전수조사한 뒤 이전 조처 등을 통해 사고를 막겠다”고 밝혔으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전수조사 결과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자동이 지역구인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분당은 30년이 넘은 도시여서 시설물 노후화에 따른 각종 사고가 우려되는 지역이어서 시민 안전을 위한 각별한 점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보듯 진단만 했지 안전조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철저한 조사를 통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정자교 사고 현장이 찍힌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녹화영상을 확보해 정밀분석에 나섰으며, 목격자 등을 상대로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이 확보한 영상에선 보행로가 붕괴 조짐이 전혀 없다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날 강력범죄수사대장을 팀장으로 한 '분당 정자교 붕괴사고 수사전담팀'을 38명으로 꾸려 수사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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