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양육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인지감수성 교육’이 열리고 있다. 손지민 기자
“요즘 아이들에게 바비인형과 비슷한 영향을 미치는 장난감이 뭘까요? ‘셀카 앱’입니다.”
지난 1일 서울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양육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인지감수성 교육 첫 수업이 열렸다. 성인지감수성은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생긴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강사로 나선 유지은 딱따구리 대표가 아름다움의 기준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비인형 이야기를 하던 중 셀카 앱을 언급하자, 참여자들 사이에서 “아!” 하는 깨달음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유 대표는 “어릴 때부터 셀카를 많이 찍으면 (과다하게 보정한) 사진이 실제 내 모습인 줄 알다가 어느 순간 거울의 나는 다른 모습이란 걸 알게 된다”며 “더 큰 문제는 나랑 유사하게 예쁘단 점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자신의 셀카를 들고 성형외과를 찾아가 이렇게 고쳐달라고도 말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셀카 앱의 보정 이미지가 바비인형이 만든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센터에는 아이들을 성별 고정관념이 없는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양육자 16명이 모였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부터 아이를 기다리는 예비아빠, 손자·손녀가 있을 법한 참여자도 강의에 참석했다. 양육자들이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그림책이나 어린이 콘텐츠를 바탕으로 성인지감수성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이 강의의 특징이다. 기존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1~2회 구성의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종종 제공하곤 했으나, 이번에 마포구에서 한달(4회)짜리 교육을 마련했다. 4주 동안 국외 성평등 교육 사례, 가정에서 익힐 수 있는 성인지감수성 강의와 성인지감수성 기반의 성교육 등이 진행된다.
강의에서는 양육자가 아이들에게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여자에게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을 씌우는 것을 ‘코르셋’, 남자에게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압박이 가해지는 것을 ‘맨박스’라고 한다. 코르셋과 맨박스에 기반한 칭찬은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아이들의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범죄 피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내용을 담은 <빨간 망토>, 성녀·악녀 이분법이 담긴 <콩쥐 팥쥐> 등 국내외 전래동화와 아이들이 많이 보는 베스트셀러 동화책의 이야기 등의 문제점도 짚었다. 성별 고정관념이 투사된 동화책의 설명을 듣던 한 참여자는 “그 책들 다 버려야겠다”며 배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잘 몰랐던 유아 콘텐츠에 대해 배우고,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내용을 배워 유익했다고 평했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 이반야(41)씨는 “아이들과 택시를 타던 중 택시기사가 딸은 이렇고, 아들은 이렇다는 둥 불편한 얘기를 계속한 적이 있다. 당시 불편한 부분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어 답답했다”며 “학교나 어린이집은 이런 교육을 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빠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김윤혁(30)씨는 “제 자녀가 어떤 콘텐츠를 보게 될지 모르지만 예비양육자로서 제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어릴 때 겪은 콘텐츠를 다 잊어먹었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어떤 영유아 콘텐츠가 있고,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을 깊게 알려줘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손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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