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730’을 쳐보세요.
“혼자 산 지 9개월인데요. 저녁 약속이 없을 때도 자꾸 혼자 술을 마십니다. ‘술을 줄여야지’ 하면서도 ‘오늘 힘들게 일했는데 맥주 한잔도 못 마시나’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합니다. 따져보면 한 주에 6일은 술을 마신 것 같습니다. 집 냉장고엔 항상 술이 있어요.”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1인가구지원센터에 방문한 기자가 직접 ‘중독치료상담’을 받았다. 센터에 상주하는 중독치료전문가 양동현 상담사는 ‘혼술’할 때 마시는 술의 양, 혼술하기 위해 약속을 취소한 경험 등을 추가로 묻더니 “아직 자제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일단 냉장고에서 술을 비우세요. 그럼 밖에 나가서 술을 사와야 한다는 ‘귀찮은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도 사러 나가면 심각성이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스스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성동구 1인가구지원센터에서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중독치료상담을 한다. 1인 가구가 각종 중독에 더 쉽게 빠지고,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2월 말 상담을 시작한 이래로 센터를 찾은 마약 등 중독자 5명이 회복 중이고, 14명은 재발 위험을 보인다. 그 외에도 40~50명이 중독치료상담을 받았지만, 중독 상태는 아닌 것으로 분류됐다. 양동현 상담사는 “집착과 갈망으로 생활이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황폐해지고, 도파민이 고장 난 상태”를 중독으로 판단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중독됐다’란 표현을 쓰지만, 실제 중독은 더 심각하고 무서운 상태라는 의미다.
치료의 시작은 갈망의 촉발 원인을 찾는 것이다. 언제,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을 때 갈망이 생겼는지를 찾는 과정이다. 종이에 갈망의 지속 시간을 적고, 갈망의 크기를 1부터 10 사이의 숫자로 표현한다. 중독행위를 했을 때와 끊었을 때의 장단점을 찾고, 내가 이루고 싶었던 미래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을 상기시킨다. 중독자에겐 이런 내용을 준비된 양식에 자필로 적게 만든다. “일반 심리상담은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공감받고, 자신에 대한 통찰을 듣는 방식으로 흘러가지만 중독상담은 내담자가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양동현 상담사는 설명했다. 이 때문에 숫자와 문자로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담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중독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술과 마약 등의 약물중독, 도박·게임·쇼핑 등 행위중독, 특정 대상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관계중독이다. 이 가운데 약물중독은 어느 정도의 갈망이 지나가면 증상이 완화되고, 지속 시간이 줄어드는 다른 중독과 달리 빠져나오기 더 어렵다. 그 외에도 ‘중독적 사고’가 있다. 중독 상태는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내려놓고 자신의 결정과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실제 중독도 이런 비이성적 자기합리화를 바탕으로 가속화한다.
양동현 상담사는 1인 가구 중에 이런 중독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는 “가족을 벗어난 1인 가구는 스스로 문제 인식을 하기 굉장히 어렵다”며 “마약, 쇼핑 등 한번 꽂힌 행위에 대해 실행까지 제지해줄 사람이 없어 중독에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다만, 1인 가구의 특성을 반영한 실태조사는 부족한 상황이다. 양 상담사는 “중독 실태조사에 가구 유형의 특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이를 연구한 포럼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