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이 우거진 옛 도로. 여름이면 이렇게 풀이 자라 도로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이승욱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절운2길 윗마을. 10여가구가 사는 이 마을로 통하는 길은 수풀이 우거져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도로 어귀에는 철제 울타리가 있어 통행이 불가능했다. 대체 도로가 있지만, 좁은 폭과 가파른 경사로 등산로나 다름 없었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읍내를 오가기가 겁난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 주민들은 망미리 1197-1번지 인근 도로를 이용해 마을을 오갔다. 하지만, 2014년 도로 안에 땅을 가지고 있던 소유자 1명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주민 통행을 막았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인근에 나 있는 작은 길을 이용해 마을을 오갔다. 하지만, 이 도로는 폭이 너무 비좁아 소방차나 응급차는 물론 일반 승용차도 오가기 힘들다.
때문에 주민들은 기존 도로를 부활시켜 소방차나 구급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양평군에 수년 동안 민원을 내왔다. 이에 군은 지난해부터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주민들의 민원은 8년 만에 결실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변수가 등장했다. 주민들이 주장한 ‘기존 도로 부활’이 아닌 다른 노선으로 사업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노선이 바뀌면 길이가 길어지고 사업 기간이 늘어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실제 기존 노선의 길이는 0.12㎞이지만 바뀐 노선은 0.95㎞이다. 사업비도 2억9000만원에서 27억7000만원으로 10배 가까이 커진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열린 양평군의회에서는 ‘최단거리 소방차 진입로 확보 목적에 맞게 애초 계획대로 사업 추진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청원서가 원안대로 채택되기도 했다. 당시 해당 청원서를 소개한 여현정 양평군의원은 “주민들의 민원 취지와 전혀 다른 노선으로 도로 개설이 논의되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소외됐다”며 “이는 예산규모와 사업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자 양평군은 최근 사업을 돌연 중단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이 커지자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사업 중단을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에 주민들은 지역 민심을 무시한 소극행정이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신청한 상태다. 주민 한아무개씨는 “바뀐 노선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도로 건설 사업은 시급성도 있다”며 “우선 주민들이 원하는 기존안대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양평군 도로과 쪽은 “도로 개설은 주민 숙원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지역 의견을 듣고 도로를 정하려고 사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또 ‘절운2길 윗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노선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 없냐’는 질문에는 “윗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도로는 아랫마을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어 그런 것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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