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는 무비판적 추진 앞장
경기도 의정부시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에서 청소일을 하는 지성준(29)씨는 하루에 4시간씩 주 5일을 일한다. 월급은 약 90만원이다. 적은 돈이지만 지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씨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고향인 의정부에서 삶을 꾸려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그는 경기북부 일부 지자체들이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노린다는 소식에 마음이 심란하다. 지역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기회발전특구는 윤석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핵심 정책이다. 정부는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에서 기회발전특구 관련 특례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문제는 만약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특정 지역에선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의 대다수 조항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씨는 이미 고강도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쳤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 택배 상하차, 공장 일 등을 했던 그는 “당시에는 버는 돈보다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은 것 같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하며 다시금 진로를 모색할 계획이지만, 만약 노동 환경이 더 나빠진다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생각도 있다. 지씨는 “법안 내용을 보니 청년들이 원하는 것의 정확히 반대 내용이었다”며 “청년들을 지역에서 내쫓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8일 취임식에서 “기회발전특구와 산업단지 대개조 정책을 중심으로 대규모 지방 투자를 촉진하고, 청년들이 유입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으로 지역에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일해야 하는 청년들은 이 법안이 기업 입장만 고려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 경기도 안성시에서 취업 준비 중인 김진현(28)씨는 “애초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것은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때문”이라며 “시대에 역행하는 법안”이라고 했다.
노동계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2월26일 논평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보편적 노동권을 무력화하는 해괴망측한 특별법안”이라며 “불균형과 불평등에 대한 근원적 처방 없이 기업의 요구만을 중심으로 내놓는 처방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노총 역시 1월4일 반대 의견서를 통해 “사실상 노동·환경에 대한 치외법권을 용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자체들은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작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노동권 침해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 역시 지난 4일 연천군, 경기연구원과 기회발전특구 지정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경기도는 앞으로 북부지역 지자체들과 기회발전특구 신청을 함께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