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새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을 두고 행정안전부와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들의 의견을 더욱 수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 행안부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광화문 월대 복원 등을 위한 ‘세종로 지구단위계획 변경’ 등을 고시하며 사실상 사업을 강행해온 서울시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9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두고 “나름대로 합의의 긴 시간을 가지기는 했으나 더 (합의를) 해야 한다”며 “시민들의 의사를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절차와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 사업을 둘러싼 행안부와의 갈등과 관련해 “(광화문광장은) 국가 광장이라는 의미가 있어 서울시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정부서울청사를 우회해서 길을 만드는 등 중앙정부와 약간의 갈등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날 발언은 ‘시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서울시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서울시는 ‘사업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업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는 행안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사업을 강행해왔다.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행안부의 협조요청에 지난달 8일 긴급 브리핑을 열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일정대로 차질 없이 진행해 새로운 광장을 시민 품으로 돌려드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시장이 나서 시민들의 의사를 더 듣겠다고 선회한 것이다.
이런 태도 변화에 대해 중앙정부와 시민의 반발에 부닥치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란 시선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내년 총선을 의식한 청와대와 여권의 기류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등 여권 수뇌부가 참여하는 최근 당정청 9인 회의에서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이 안건으로 논의됐고, 이 자리에서 최근 여러 정치적 논란이 이는 상황에서 광화문광장으로 논란을 더할 필요가 없다는 데로 의견이 모였다는 언론보도도 나온 상황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착공을 내년 총선 이후에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정무직 고위 관계자는 “총선 때 (광화문광장 공사가 진행되면) 인근 교통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며 “(광화문광장은 정치적) 상징성도 있기 때문에 (공사가 진행되면) 야당의 공격 지점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당초 계획상 착공 시기가 내년 상반기로 총선 이후였다”며 “일정상 6월께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총선과 광화문광장 공사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당장 지금 단계에서는 일정 변화가 크게 없다. 별도로 이야기가 더 진행돼야 (일정을) 다시 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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