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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수도권

“낡은 악기에 새 숨결, 추억 나눠요”

등록 2019-12-19 05:00수정 2019-12-19 08:27

낙원상가 상인들 재능기부 나서
서울시 악기 기증·나눔 행사 힘 보태
기증받은 700대 문화소외층 품으로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 태림악기 이혁재 대표가 시민이 기증한 바이올린을 고치고 있다. 이정규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 태림악기 이혁재 대표가 시민이 기증한 바이올린을 고치고 있다. 이정규 기자

오래된 현을 새 현으로 교체하고 줄받침인 브리지도 다듬자, 낡고 망가진 악기가 멀쩡한 바이올린으로 거듭났다. 손가락에 천을 두르고 악기 곳곳에 배어 있는 까만 때를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지워나가자 금세 반짝반짝 광이 났다. “바이올린 상태만 봐도 이 악기를 쓰던 주인의 성격이 급한지, 성실하게 연습을 했는지 등을 알 수 있어요.”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에서 2017년부터 기증받은 악기를 수리하고 있는 이혁재(47)씨가 웃으며 말했다. 악기를 다듬는 그의 책상 주변 벽에는 망치와 가위, 톱을 비롯해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공구가 걸려 있었다.

지난달 19일 만난 그는 낡은 바이올린에 관해 이야기했다. “기증받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보니 쪽지가 하나 들어 있더라고요.” 쪽지에는 ‘우리 애 생애 첫 악기’라고 적혀 있었다. “10년 전, 아이에게 악기를 사준 부모가 쓴 거더라고요. 방치된 악기지만 누군가에겐 추억이 담긴 물건이에요. 악기가 필요한 누군가가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게 깨끗하게 고쳐야죠.” 그의 손이 바빠졌다.

이씨는 서울시의 ‘악기 기증·나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서울시가 낙원악기상가 번영회,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 서울교육청과 함께 벌이는 나눔 사업이다. ‘누구나 악기를 배우고 즐기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악기를 기증받은 뒤, 이를 고쳐서 문화소외계층 등 악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눠준다. 지난 10월2일 시작된 캠페인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아름다운가게는 지난 10~11월 서울시내 29개 매장에서 시민들한테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기타, 색소폰, 플루트 등 쓰지 않는 악기를 기증받았다. 유명 악기회사와 가수 등도 동참했다. 이렇게 악기 700대 가까이가 마련됐다. 피아노를 기증한 시민 김연희(57)씨는 “20년 전 큰맘 먹고 200만원을 주고 산 귀한 피아노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내놨다”고 말했다. 낙원악기상가 번영회 상인들은 기증받은 악기를 수리하며 재능기부를 했고, 서울시는 새롭게 태어난 악기를 올해 안에 시민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서울시는 내년 3월 낙원악기상가 1층 주차장에 ‘낙원생활문화지원센터’를 완공한 뒤, 악기 나눔 캠페인을 이어간다. 센터 관계자는 “센터에서는 악기 나눔뿐만 아니라 악기 교육 등의 프로그램도 제공한다”며 “악기 기증 문화를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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