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강제 퇴거 조처가 시작된 2011년 8월22일 오후, 한 노숙인이 쇼핑몰로 이어지는 역사 로비 한쪽에서 잠을 자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김아무개(56)씨는 2년 전 서울 영등포 노숙인 시설에서 거리로 나왔다.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벌던 그는 다리와 어깨를 다쳐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다. 폐지를 주워 파는 것이 유일한 일거리였다. 하루에 번 돈은 3천원 정도였다. 김씨는 2004년에 뇌 병변 진단을 받고 뇌종양 수술을 받기도 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해야 했지만, 돈이 없어 병원진료도 받을 수 없었다. 결핵도 앓다 보니 팔다리는 말라갔다.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남은 형제는 2명은 연락이 끊겼다.
이런 김씨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양천구 목1동 주민 이아무개(79)씨를 만나면서다. 이씨는 양천공원을 거닐 때마다 김씨의 안부를 살피던 동네주민이었다. 이씨는 1500원짜리 막걸리를 먹으며 끼니를 떼우는 김씨에게 국밥을 한 그릇씩 사주곤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초겨울이 다가오자, 이씨는 김씨를 위해 자신의 집 지하방을 내어줬다. 이씨는 2015년 1월부터 거주 불명이 된 김씨의 사정을 알고 동 주민센터에 그를 데려갔다. 과태료 4만5천원을 대신 내주고 말소된 김씨의 주민등록증도 살려냈다.
이씨의 ‘신고’로 김씨의 존재를 알게 된 양천구는 김씨에게 생계비, 의료비, 생필품 등을 지원했다. 날마다 방문간호사도 김씨를 찾아 건강상태를 살펴봤다. 동네 성당과 직능단체도 냉장고, 전기 레인지, 전기매트 등을 지원했다. 김씨는 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급여와 서울형 긴급복지 생계비도 신청했다. 폐결핵 진단을 받은 김씨는 20여일간 이씨의 집에서 머물다 현재 은평구 시립병원 서남병원에 입원 중이다.
서울시는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발견하면 신고할 수 있게 돕는 ‘시민찾동이’를 운영 중이다. 이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동 주민센터나 다산콜센터에 알릴 수 있게 공공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웃리치 프로그램이다. ‘아웃리치’란 ‘손을 내밀다’라는 영어 단어에서 파생된 용어다.
이씨는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시민찾동이 같은 말은 잘 몰랐지만,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추운겨울 공원에서 잠들면 자기도 모르게 동사할까봐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윤영일 양천구 목1동 방문복지팀장은 “어려운 분들을 직접 발굴하시고 신고하시는 주민들이 종종 계신다”며 “주변에 어려운 분들이 있으면 신고해주시는 분들을 ‘시민찾동이’라고 부른다. 이분들의 도움이 크다”고 말했다.
시민찾동이는 서울 시민카드 앱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가입하거나, 주민총회나 지역축제에서 시민찾동이 부스가 열리면 간단한 서명으로도 가입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 서울시 시민찾동이 가입자 수는 20만5089명으로 집계됐다. 서명가입은 18만1764명이고, 앱으로 가입한 수는 2만3325명이다. 신고 건수는 8563건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찾동이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당신은 타인의 어려움을 알릴 수 있다’고 공공이 알려주는 정책”이라고 소개했다.
시민찾동이가 된 서울시민은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보이면 각 동 주민센터나 다산콜센터(120번)에 전화하면 된다. 서울시민카드 앱 시민찾동이 공지에 댓글을 달아 신고할 수도 있다. 시민 찾동이의 신고를 받은 자치구는 동 주민센터 연락처가 적힌 안내문을 신고된 해당 세대에 직접 전달한다. 이후 당사자 본인의 요청이 있거나 공공의 개입이 필요할 경우, 복지플래너나 방문간호사가 직접 방문한다. 이후 접수된 사안에 대해 동 주민센터와 복지관, 파출소, 학교 등을 모아 통합사례관리 회의를 거친 뒤 공적 지원 및 관리에 들어간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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