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교정시설부지 개발 이후 조감도(예정).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서울 구로구 고척동 옛 서울남부교정시설(서울남부구치소) 터가 ‘1급 발암물질’에 오염된 사실이 개발사업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지방정부나 시행사가 이런 사실을 주민에게 공개할 의무가 없어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토양환경보전법’을 보면, 토양정밀조사의 결과는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개발사업에 따른 조사’에 대해서는 공개의무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중금속 등에 땅이 오염됐더라도 정작 주민들은 관련 사실을 알기 어렵다. 실제로 구로구 주민 287명은 지난해 10월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옴부즈만위)에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서울남부교정시설 부지에서 중금속 등의 발암물질이 법정 기준치를 크게 벗어나는 수치로 조사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해 1월 뉴스 보도를 접하고 나서야 상황을 인식했다”며 구로구와 시행사 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고척동 100번지 옛 서울남부구치소 터(10만5087㎡)에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2205채와 복합행정타운, 공원 등을 조성되는 대규모 복합개발사업이다.
이곳에서는 9가지 중금속이 법정 기준치를 크게 초과해 검출됐다.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이 투자한 사업 시행사인 ‘고척아이파크대한뉴스테이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가 2017년 8월 구로구에 제출한 토양정밀조사 결과서를 보면, 사업 대상지에서 ‘1급 발암물질’인 비소가 기준치(25㎎/㎏)의 25배에 이르는 637.25㎎/㎏이나 검출됐다. 카드뮴(14㎎/㎏), 벤조에이(a)피렌(3.291㎎/㎏) 등도 기준치의 3.5~4.7배를 웃돌았다. 구로구는 1940년대 이곳에 있었던 광산개발업체 공장의 영향으로 땅이 오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옴부즈만위는 주민들의 문제 제기에 감사를 벌였지만, 지난달 “구로구가 관련 업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토양정밀조사 결과를 주민들에게 공개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주민들이 토양오염 사실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환경영향평가서를 통해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별도의 공지가 없었고 서울시의 관련 누리집을 검색해야만 확인할 수 있어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2017년 2월 구로구가 주민설명회를 통해 발표한 환경영향평가도 있지만 ‘초안’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초안에서는 “토양오염도 분석을 실시한 결과 비소, 아연, 불소, 납 등이 기준치를 초과해 토양개황조사 및 토양정밀조사 등이 필요하다”고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정밀조사 결과 등은 반영돼 있지 않았다.
옴부즈만위도 관련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황이다. 이 위원회는 구로구와 시행사가 적극적으로 주민들에게 토양오염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 법 위반은 아니지만 “토양오염 등은 주민 건강과 직접 관련될 수 있는 내용이므로 주민의 알권리 향상을 위해 고시공고나 주민설명회만이 아닌 다른 안내 방법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아울러 환경부에 토양환경보전법 등에 대한 개정 검토 및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조례 등의 개정을 건의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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