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희(가운데) 해양경찰청장이 17일 안보대책회의를 열어, 대북상황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튿날인 17일, 김포·파주·연천 등 경기북부 접경지역과 연평도 등 서해 5도 주민들은 평소처럼 농사와 출어 일을 하면서도 혹시나 군사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 하루를 보냈다.
지난달 31일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형풍선 20개에 대북전단 50만장을 날려보내 북의 거센 반발을 샀던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일대에는 이날도 경찰이 전단 기습살포에 대비해 고막리 마을회관 앞에 버스를 상주한 채 성동리, 용강리 등을 돌며 비상근무를 했다. 김용태 월곶면 주민자치위원장은 “김포는 북이 쉽게 타격은 못하겠지만 주민들이 연평도 포격전 처럼 군사충돌로 이어질까 걱정하고 있다”며 “특히 어르신들은 몇 년 전에도 대피소 생활로 불편을 겪은데다 한국전쟁 트라우마도 있어 겉으로 동요는 없지만 민감해 하신다”고 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 민간인 선박 항행 등을 추진해온 김포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올 것이 왔다”며 허탈해했다. 김대훈 김포평화나비 상임이사는 “북이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앞서 지난달부터 여러차례 담화를 통해 시그널을 보냈는데 청와대 안보라인과 통일부, 국방부 등에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정부가 민족자주 입장에서 선제적 조처를 했어야 했는데 미국 눈치만 보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통일부 장관이 최근에도 한강하구를 방문해 민간선박 항행이나 남북 공동이용 등 무지갯빛 환상을 심었는데 한동안 어렵게 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민통선 마을 주민들은 이번 포격으로 애써 준비해온 관광 재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완배 통일촌 이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지난해 10월부터 민통선 관광이 중단된데다 코로나19로 더욱 악화돼 농산물 판매도 못하고 지역경제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관광 재개를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쳤는데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으로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전날 오후 ‘뉴스를 보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외출을 자제해달라'는 방송을 내보냈던 파주시 대성동마을과 통일촌, 해마루촌 등 민통선 마을들도 이날 출입 통제없이 평소와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지난 2014년 북이 대북전단을 담은 기구를 향해 14.5㎜ 고사포를 발사해 남북이 무력충돌을 겪었던 연천군 중면 일대도 차분한 일상이 이어졌다. 은금홍 횡산리 이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외부인 출입이 통제돼 불편을 겪고 있지만 마을 분위기는 농삿일 외에 평소와 달리 특이점은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 옹진군 최북단 서해5도도 이날 특이동향이 없는 가운데, 어선 104척이 출어해 별다른 통제없이 정상 조업을 했다.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연평도와 소연평도에서는 어선 28척이 꽃게잡이에 나섰다. 까나리 등을 잡는 백령도(35척), 대청도(33척), 소청도(8척) 등 다른 서해5도에서도 어선 76척이 정상 조업을 했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지금은 조업을 통제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서해5도 주민들은 북이 서해상에서 해안포 사격 훈련을 할 때마다 조업 중인 어선이 회항하거나 출어가 통제된 적이 많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2014년 북의 해안포 사격 훈련으로 긴급 대피령이 내려져 주민 4천여명이 대피소에서 4시간 동안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백령도 어민 김아무개(62)씨는 “서해5도에서 오랫동안 긴장 속에서 살며 내성이 생기긴 했지만, 남북관계가 악화할 때마다 불안한 건 사실”이라며 “조업이 통제되면 생계가 위태로워진다”고 말했다.
한편,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은 이날 안보대책회의를 열어 “군과 정보공유 강화 등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동·서해 접경해역 우리 어선의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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