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의회 의장 선거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짬짜미는 물론 사실상 ‘기명투표’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의원들이 의장으로 지지하는 의원 이름을 기표용지에 써 내면서 누가 투표를 했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안양시의회 의장 선거는 일반 투표와 달리 후보자가 별도로 없고, 의원 개인이 지지하는 동료 의원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써 내는 이른바 ‘교황 선출 방식’이다.
14일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등의 말을 종합하면, 안양시의회는 지난 3일 제8대 시의회 하반기 의장으로 민주당 정맹숙 의원을 선출했다. 안양시의회는 민주당 13석, 미래통합당 8석으로 꾸려져 있다. 이날 선거에 앞서 다수당인 민주당은 소속 의원 2명이 경선을 벌여 정 의원을 의장으로 뽑기로 했으나, 다른 의원이 불복하면서 잡음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 12명은 회의를 열어 투표용지 기표란에 의장 후보 이름을 적을 위치를 의원마다 지정했다고 연대회의는 주장했다. 야당과 의석수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아 이탈표가 생길 경우 의장을 뺏길 수 있고, 당에서 지명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라는 게 연대회의 설명이다.
노훈심 연대회의 사무국장은 “경선에 불복한 의원 1명을 뺀 12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기표용지 상하좌우에 정맹숙 의원의 이름을 써넣는 방식으로 이탈표를 방지하는 등 비밀투표 원칙을 어겼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풀뿌리민주주의에 오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사실은 투표에 앞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대화내용 녹취록 등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알려졌다. 녹취록에는 한 의원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안양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의장단 선출 과정에서 도를 넘은 짬짜미 선거를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13일 안양시의회 앞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공
이에 연대회의 쪽은 “이번 투표는 지방자치법 제48조 1항의 ‘시·군 및 자치구 의장과 부의장 각 1명을 무기명투표로 선출해야 한다’는 조항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장 선출은 무효이며, 민주당의 해명이나 사과가 없으면 고발 등 법적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필여 안양시의회 미래통합당 대표는 “불법행위를 통해 선출된 의장단은 인정할 수 없다. 선임의결 효력정지 신청과 투표용지 보전 신청 등을 통해 이번 투표의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의장으로 선임된 정 의원과 안양시의회 민주당 대표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연대회의는 지난 13일 오전 안양시의회 앞에서 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초등학생도 지키는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을 위반해 민주주의에 역행했다. 민주당 경기도당 등은 당 차원에서 위법한 행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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