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아파트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남 여수 출신 20대 ㄱ씨는 2018년 취업과 함께 경기도 한 지역으로 올라왔다. 동료들과 회사 근처 공동 숙소에서 생활하게 됐는데, 임시 숙소로 전입신고를 하는 대신 서울 은평구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80대 할머니 집으로 주소를 옮겼고 우편물 수신 등을 부탁했다.
ㄱ씨 할머니는 지난 7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3개월 뒤인 10월 말까지 퇴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려면 임차인과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손자인 ㄱ씨가 여수에 살 때 모친으로부터 고향집을 증여받았기 때문이다. ‘날벼락’을 맞은 ㄱ씨는 서둘러 주소지를 옮겼으나 소용없었다. ㄱ씨의 할머니는 짐을 빼야 할까 말아야 할까?
ㄱ씨가 “할머니가 노년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빼앗기게 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는 배심원단을 꾸려 심사한 끝에 지난 18일 공사에 “퇴거 통보를 철회하고 임차인이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하라”고 권고했다. 배심원 7명 가운데 6명이 ‘퇴거는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배심원단은 “ㄱ씨는 편의를 위해 일시적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한 것으로 보이고 할머니와 실질적으로 생활을 공동 영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자신의 전입으로 계약이 해지될 것이란 걸 알았다면 ㄱ씨가 구태여 세대원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주자 연령(80대)과 코로나19로 인한 전세대란 등의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박근용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장은 “ㄱ씨처럼 서류상 적발 외에 개별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정을 참작할 만한 공공임대주택 민원 사례가 적잖다”며 “퇴거 명령 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사는 해당 권유를 수용할지를 검토 중이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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