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남쪽 구석 사형장 담벼락(네모 표시) 밖 ‘통곡의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원 표시)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전날 온 눈이 그 위를 덮었다.
독립투사들의 한 서린 마지막 생을 묵묵히 지켜봤던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옆 ‘통곡의 미루나무’가 쓰러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4일 <한겨레>의 취재에 “지난 10월 태풍에 ‘통곡의 미루나무’가 쓰러졌다”고 말했다. 역사관 쪽은 “쓰러진 뒤 확인해보니 이미 뿌리의 70% 정도가 고사한 상태였다”며 “미루나무의 수령이 80~100년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천수’를 누렸다”고 말했다. 이 나무는 1923년 일제가 서대문형무소 남쪽 끝에 사형장을 지을 때 함께 심었다. 조국 독립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독립투사들이 이 나무를 부여잡고 한 맺힌 울음을 토해냈다고 해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돼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투사는 4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908년 10월 문을 열어 1987년 11월까지 감옥으로 쓰인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11월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목조건물인 사형장은 5m 높이의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형장. 담장 밖에 ‘통곡의 미루나무’가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나무는 쓰러졌지만, 자손을 남겼다. 역사관 쪽은 “‘통곡의 미루나무’가 고사할 것에 대비해 3~4년 전에 뿌리에서 자란 2세 나무 두그루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관 쪽은 또 남다른 의미를 지닌 이 나무의 밑동도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따로 문화재로 등록됐던 나무는 아니지만, 수감되신 분들이나 교도관들에게 워낙 의미가 깊은 나무라서 말려서 그 자리를 기념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중요한 문제라 급하게 결정할 수 없어서 현재 외부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있다. 내년에는 이 밑동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통곡의 미루나무’는 두그루였다. 사형장 담장 안과 밖에 같은 날 나란히 심어졌다고 한다. 두달 전 쓰러진 미루나무는 바깥쪽 나무였다. 담 안쪽 나무는 3년 전인 2017년 봄에 고사했다. 이 나무는 바깥 나무에 견줘 높이가 절반도 되지 않고 바싹 마른 채 볼품없었다. 이를 두고 ‘나무가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사형장에서 억울하게 숨진 독립투사들의 한이 서려 있기 때문’(‘서울 이야기 21선’ 중 ‘서대문형무소 미루나무의 비밀’)이라는 구전도 있다. 글·사진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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