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0월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휘발유 탱크가 폭발해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화작업에 나서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2018년 경기 고양시 ‘저유소 화재 사건' 당시 풍등을 날려 화재 원인을 제공한 혐의(실화)로 기소된 외국인 노동자에게 1심 법원이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5단독 손호영 판사는 23일 오후 열린 ㄱ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이 풍등을 날린 행위로 인하여 막대한 경제적, 환경적 피해가 발생했으며 피고인은 화재에 취약한 저유소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이어 “피고인의 주의 의무 위반 정도,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 규모, 피해 회사의 과실 정도, 외국인 근로자로서의 지위·업무태도, 탄원 내용, 국내에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손 판사는 “저유소의 존재를 알고 있는 피고인이 풍등을 날리지 않았다면 화재 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피고인이 화재 발생 위험성의 주의 의무를 위반했기에 과실 혐의를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고인은 단순한 호기심·장난에서 풍등을 날렸을 뿐인데, 여러 불운이 겹쳐 피고인의 과실에 비해 거대한 결과가 발생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피고인이 풍등을 날린 행위를 규범적으로 과실로 평가할 수는 있으나 책임을 모두 지우는 것은 무척 가혹해 그 처벌의 정도를 양형에서 참작하기로 한다”고 덧붙였다.
선고 결과가 나오자 변론을 대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쪽은 ‘이주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법원의 판결을 엄중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반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입장문에서 “법원은 형식적으로 이뤄진 화재교육의 존재를 이유로 당사자(피고인)가 저유소의 존재를 알았고, 과실이 인정된다고 보았다”면서 “특히 법원은 변호인들이 신청한 현장검증을 하지않은 채 저유소가 육안으로 확인된다고 단정한 사실인정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은 화재 발생의 책임을 당사자(피고인)에게 모두 물을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도, 각 200만원 또는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안전관리자들에 비해 3∼5배에 달하는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했다”면서 “저유소에 대한 안전 관리 부재로 비롯된 화재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2018년 10월7일 오전 10시30분께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인근 터널 공사 현장에서 풍등에 불을 붙여 날렸고, 풍등 불씨가 저유소 인근 건초에 붙은 뒤 저유탱크에서 흘러나온 유증기를 통해 탱크 내부로 옮겨붙으면서 불이 나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화재로 저유탱크 4기와 휘발유 등 약 11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당시 경찰은 ㄱ씨에게 중실화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검찰에서 반려됐으며, 국가인권위원회는 ㄱ씨의 경찰 조사과정에서 자백을 강요한 진술거부권 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 앞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ㄱ씨에게 1천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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