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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아 함께 이사 가자” 재개발지역 ‘묘수’ 짜는 사람들

등록 2020-12-24 04:59수정 2020-12-24 10:07

서울 휘경동 ‘케어테이커’ 10명 활약
주민 떠나고 철거시작돼 위험 노출
고양이 이주위해 매주 급식소 이동
서울시 ‘동물보호 사업’으로 치료 지원
서울 동대문구 휘경3재개발구역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최혜민(27)씨가 지난 21일 오전 동네 공원에서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동대문구 휘경3재개발구역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최혜민(27)씨가 지난 21일 오전 동네 공원에서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꽝꽝꽝….’ 지난 2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휘경3재개발구역에서는 철거가 한창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주택 문 앞엔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곳곳이 쓰레기 더미였다. 인적은 드물었다. 이곳에는 지하 3층, 지상 35층짜리 아파트단지(2099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두꺼운 패딩 재킷에 가방을 멘 최혜민(27)씨가 나타났다. 그가 “밍크, 잘 있었어?”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길고양이 예닐곱마리가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최씨는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텅 빈 공원 정자 밑에 보온재를 채워 넣은 고양이들의 ‘겨울집’ 상태를 살폈다.

최씨는 중고교 때부터 이 지역 길고양이를 돌봐왔다. 최씨는 이 길고양이들의 특성은 물론 ‘가족 관계’까지 꿰고 있다. 이 지역엔 길고양이 70여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최근엔 지역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버려진 고양이들도 꽤 된다고 했다. 최씨는 “평소 안 보이던 성묘(어른 고양이)가 밥 자리에 나타나요. ‘코리안 쇼트 헤어’가 아닌 품종 고양이도 보이는데 버려진 고양이일 가능성이 크죠”라고 말했다.

최씨는 흔히 캣맘·캣대디라 불리는 ‘케어 테이커’ 10여명과 함께 ‘휘경냥’(인스타그램 @hwigyeng.nyang)이라는 이름으로 길고양이 돌봄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18년을 살다 8개월 전 다른 곳으로 이사한 송인숙(57)씨도 그중 한명이다. 거의 매일 30~40분을 걸어 옛 동네 길고양이를 챙긴다. 혼자 사는 그에게 가족 같은 위로가 돼준 고양이들이 눈에 밟혀서다. 송씨는 “고양이들도 어디로 이사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참 힘드네요”라고 했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들은 머물던 자리를 좀체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한테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발길질에 차여 다쳐도 한자리에 머무른다. 철거 시작 이후엔 깨진 유리나 폐자재에 고양이들이 다친다. 그러나 앞으로 땅을 파헤치는 지반공사가 본격화되면 더 큰 위기에 놓일 게 뻔하다.

서울시와 동물보호단체는 올해부터 재개발·재건축 지구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서울시 도시정비구역 동물보호 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을 포함해 모두 6곳(봉천·청담·홍은·방배·중화·휘경동)에서 시범사업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1억2천만원을 지원했다. ‘동물권 행동 카라’와 케어 테이커들은 재개발조합과 협의해 고양이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계류장’을 마련했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3재개발구역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최혜민(27)씨가 지난 21일 오전 고양이 계류장으로 쓰이는 건물에서 다치거나 병에 걸린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동대문구 휘경3재개발구역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최혜민(27)씨가 지난 21일 오전 고양이 계류장으로 쓰이는 건물에서 다치거나 병에 걸린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러나 재개발조합 입장에서는 일부 건물의 철거를 미루는 것이기 때문에 협조가 쉽지 않았다. 카라의 최인수 활동가는 “계류장 마련이 조합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조합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케어 테이커들과 서울시에서 노력한 덕분에 계류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은 과제는 고양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다른 아파트단지 근처로 고양이들을 이끌기 위해 매주 급식소를 열발자국 남짓씩 옮기고 있다 한다. 더 좋은 음식과 잠자리로 이동을 유도한다. 자기 영역에 민감한 고양이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동네 자체가 철길 두개에 둘러싸여 있어 걱정이 컸지만, 고양이들이 철길 육교를 건넜다. 이동은 순조롭다.

최혜민씨는 “고양이 집이나 밥그릇에 구청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으면 사람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않아 오래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방 훼손된다”며 “정말 작은 제도와 지원 하나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지자체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윤민 주무관은 “도시정비구역 길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올해 사업성과를 바탕으로 자치구들과 협의해 규범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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