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5월 프로그램이 폐지된 <에스비에스>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 홈페이지 화면.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2016년 ㄱ씨는 수년간 준비해 어렵게 방송사 공채 코미디언에 뽑혀 2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유명 코미디언’ 꿈을 키우며 회의·리허설·촬영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출연료는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한 주 40만원. 그마저도 2017년 프로그램 폐지로 계약 기간조차 못 채웠다. 결국 꿈을 접고 현재까지 택배와 편의점 점원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방송연기자 두 명 중 한 명은 ㄱ씨처럼 생계 문제 때문에 ‘투잡’을 뛸 수밖에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는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과 함께 올 10∼11월 배우·성우·코미디언 등 방송연기자 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런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연기와 다른 일을 병행한다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58.2%에 달했다. 그 이유로는 생계비 보전(78.5%)이 가장 많았고, 추가 수입(9.5%), 진로 변경(2.8%)순이었다. 응답자의 평균 한해 수입은 1997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뿐 아니라 방송계에서는 구두 계약 체결, 출연료 미지급 등 불법도 만연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는 49.4%에 불과했다. 차기 출연을 빌미로 한 출연료 삭감(27.1%), 야외수당·식대 미지급(21.8%), 18시간 이상 연속 촬영(17.9%), 편집 등에 따른 출연료 삭감(12.5%), 계약조건과 다른 활동 강요(10.5%) 등 병폐도 여전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보면 서면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대중문화예술인 방송출연표준계약서(배우)’를 보면 촬영일 2일 전까지 대본을 제공하고, 1일 최대 촬영시간은 18시간 이하로, 추가촬영 땐 별도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서울시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방송연기자들의 출연계약서 8종도 법률 검토했다. 그 결과, △제작사 책임 축소·면책△연기자 지식재산권의 포괄적 이전△소송제기 금지△과도한 위약금 등 불공정 약관으로 의심되는 조항들을 다수 발견했다.
서울시는 관계자는 “열악한 여건과 불공정 관행으로 인한 연기자들의 창작의욕 저하는 대중문화산업 위축으로 이어진다”며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종합해 관련 법령 및 제도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계 부서, 국회, 방송사, 외주제작사와 개선방안을 도출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문화·예술 분야 불공정 상담센터인
눈물그만을 통해 온라인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